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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4 10:32 수정 : 2013.11.05 10:44

안보윤 소설 <소년 7의 고백> ⓒ전지은

안보윤 소설 <1화>



2010-08-18-18:31:09

……모르겠어요. 이젠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날, 거기 있었던 게 맞나요? 동네 애들이 빠짐없이 모두, 303동 옥상에 모여 있었어요? 제 손이…… 우리 발이 정말로 그렇게 움직였나요, 미주 누나를 우리가…… 형사님, 딱 한 번만 솔직하게 얘기해주세요. 이제 조서도 다 썼고 카메라도 껐잖아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우리가 정말, 구제불능의, 파렴치한 성폭행범이 맞는 건가요?

*

2010-08-17-21:08:54

3층까지 다 아저씨네가 쓰는 거예요? 경찰서라는 거 되게 크구나. 여기 문들도 다 방인가 봐요. 조사1실, 조사2실…… 우리 학교 과학실 복도도 이렇게 생겼는데. 복도에 실습실1, 실습실2, 팻말만 쫙 붙어 있어요. 근데 거기 실습실은 잠가놓고 아무도 안 써요. 과학 수업 시간에 화학 실험도 안 하고 해부도 안 하고 우린 맨날 비디오만 봐요. 선생님은 그냥 다, 외우면 된대요. 직접 안 해봐도 알려준 대로 외우기만 하면 백 점이라고. 근데요 아저씨, 나 여기 왜 온 거예요? 아저씨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오는 동안 열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모르겠어요. 잘못한 것도 아무것도 없거든요, 백차도 처음 타봤고.

아, 잡아당기지 마요, 안 그래도 팔 저려 죽겠는데. 수갑은, 나 수갑은 왜 찼어요? 경찰서 올 때 원래 수갑 차고 오는 거예요? 한밤중에 아저씨들이 집으로 들이닥쳐서 막 팔 꺾고 벽에 얼굴 처박고 막, 그렇게 끌고 오는 거 맞아요? 이쪽 어깨 빠진 거 같아요, 얼굴도 화끈거리고. 내 턱 까졌어요? 피 나요? 아우 씨, 진짜 아픈데. 영화에서나 그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졸라 리얼하데요. 동영상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음 대박이었을 텐데 아깝다. 테러범 진압하는 동영상 본 적 있는데, 뭐였더라 무슨 은행인가 쇼핑몰인가에서 몸에 폭탄 두르고 나대는 복면 때려잡는 장면이 딱 그랬어요. 나는 뭐 폭탄은커녕 빤스만 입고 있었는데 졸라 억울하게 처맞고. 아저씨, 근데 이거 누구 옷이에요? 냄새나요. 여기로 들어가요? 아 씨, 여기도 냄새나네. 페브리즈 같은 거 없어요? 냄새 싹싹 뭐 그런. ……아저씨 졸라 과묵하시네요. 난 씨발, 불안해 미치겠는데.

우리 할머니 불러주세요. 밖에 없어요? 아까 막 소리 지르면서 따라오는 거 같았는데. 우리 할머니 목소린 딱 들으면 알아요, 벙어리라서 식도발성인가 뭐 그런 거 하거든요. 담배를 하도 피워서 목 어디를 잘라냈다는데 목소리 완전 깨요. 백 명이 동시에 트림하는 소리랑 똑같아요. 승호는 물개가 껑껑 대는 소리라던데, 병신, 지가 물개를 언제 봤다고. 암튼 우리 할머니 불러줘요. 아직 집에 있음 전화라도 해주세요, 내 옷 좀 갖다 달라고. 이거 냄새나서 못 입겠어요, 디자인도 졸라 구리고. 아 진짜, 여긴 뭐 꼴랑 책상 하나랑 의자밖에 없는데 냄새가 이렇게 난대요, 누가 똥 쌌나.

……몰라요. 여기 왜 왔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아까부터 물어봤잖아요, 왜 잡혀 왔느냐고. 아저씨가 졸라 씹었지만.

……이상하네. 암만해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있잖아요, 저번에 경훈이 형이 오토바이 쌔비다 걸렸을 땐 안 이랬거든요. 그 형은 진짜 나쁜 짓 한 건데도 형사 아저씨들이 팔만 잡고 갔거든요, 정강이 까고 수갑 채워서 막 개새끼처럼 질질 끌고 가진 않았거든요.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씨발.

아, 됐어요. 뭐요. 욕 안 했어요. 아파서 그래요, 어깨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다 왔는데 수갑 왜 안 풀어줘요? 조사실 들어왔잖아요. 어, 이 방 팻말은 빈 딱지네. 취조? 취조준비실? 그게 뭔데요?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됐고, 일단 수갑부터 풀어줘요. 기분 졸라 더러워요. ……내가 뭘 어쨌길래요? 뭐라뇨, 아저씨가 방금 그랬잖아요, 여긴 죄지은 놈들 빨가벗기는 데라고. 죄지은 것도 없는데 그럼 난 왜 데려왔어요? 뭘 발뺌을 해요, 암것도 한 게 없다니까.




안보윤(소설가)


안보윤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009년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장편소설 《사소한 문제들》, 《우선 멈춤》, 《모르는 척》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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