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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5 10:37 수정 : 2013.11.06 10:15

안보윤 소설 <2화>



2010-08-17-21:48:29

……박성재. 열네 살이요. 주민 번호는 몰라요. 그 긴 걸 뭐하러 외워요. 할머니 건 아는데 그거 부를까요? ‘방과 후 전쟁활동’ 보려고 성인 인증할 때 외워놨어요. 졸라 재밌는 웹툰인데 것도 몰라요. 아깐 나에 대해 다 안다면서요, 내가 누는 오줌 색깔까지 다 안다고 졸라 이빨 까더니. 내가 뭘 졸라밖에 안 해요, 존나, 조올라, 열라, 쩔어, 다 할 줄 아는데.

수원중학교 1학년 7반 26번. 친구야 당연히 있죠. 제일 친한 친구는, 김기열이요. 또 누가 있느냐면, 고승호랑 주교창이랑 그렇게요. 교창이는 한 살 어린데 그냥 친해요. 다 같은 아파트 살거든요. 우리 동네 개후져서 아무도 이사 안 와요. 아파트도 지은 지 백 년은 된 것 같은 임대고. 딴 동네 가면 그지 새끼라고 놀려서 우린 우리끼리만 놀아요. 뭐 하고 노느냐면, 인원 모이면 축구 하거나 돈 생기면 피시방 가서 게임 하거나 싸움하거나. 딴 동네 애들하고요. 걔네가 자꾸 놀린다니까요, 우리 애들 잡아다 패기도 하고. 그럼 형들이 쫓아가서 몰빵 놓고 튀어요. 아파트 애들끼린 서로 다 알죠, 맨날 보니까요.

몰라요. ……냄새난대요, 우리 아파트. 다들 졸라 가난하고 노인네들 졸라 많으니 냄새도 나겠죠. 여름 되면 무슨 빨래도 아니고 계단이랑 놀이터에 노인네들만 쫙 널려 있는데 완전 좀비 군단이 따로 없어요. 영화 찍으면 분장할 필요도 없을걸요. 해골만 남아서 누런 이가 턱까지 내려와 있고 막, 배꼽까지 다 보이게 늘어난 러닝 하나 덜렁 입고 돌아다니고. 짜장면 그릇에 씌운 랩 젓가락으로 뜯으면 쭈글쭈글 밀리잖아요, 살가죽 밀린 꼬라지가 딱 그거예요. 속옷도 안 입고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 침 흘리고 담배 피우고 가래 뱉고. 아 씨, 생각만 해도 쏠리네. 아저씨, 왜 사람은 늙으면 그렇게 구질구질해져요? 곰팡이 난 것처럼 얼굴도 시커멓고 얼룩덜룩, 입 냄새 졸라 나서 옆에 가기도 싫어요. 예? 우리 할머닌 안 그래요. 가래도 안 뱉고 속옷도 다 입고 다니고 입 냄새도 안 나요. 다른 집은 기초수급비 나오면 그걸로 한 달 뭉개는데 우리 할머니는 공공근로도 나가고 폐지도 주워요. 저번에 시민공원 잡초 뽑아 받은 돈으로 내 아디다스 운동화도 사다 주고 그랬어요, 완전 간지 나는 걸로. 에이 씨, 아저씨 때문에 집에서 쓰레빠 끌고 왔잖아요, 이거 화장실 쓰레빤데. ……우리 할머니 진짜 밖에 없어요? 저 데리러 안 온대요?

동네 애들요? ……다 비슷한데. 사는 것도 하고 다니는 것도 다 비슷해요. 우리도 늙으면 그 노인네들처럼 아파트 앞에 널려 있겠죠 뭐, 미역처럼. 특별히 떠오르는 거? 없는데요. 이상한 사람…… 그건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다 이상하고 어떻게 보면 다 정상이고. 아 씨, 왜 때려요. 저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솔까 다 똑같단 말예요. ……아무거나요? 그냥 아무거나 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럼 집에 보내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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