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 소설 <3화>
성격, 음, 애들 성격은 그냥 다, 착해요. 거짓말 아니라 진짜 착해요. 기열이는 할아버지랑 아빠랑 셋이 사는데요, 걔네 할아버지가 되게 이상한 병에 걸렸거든요. 살인가 근육인가가 저절로 흐물흐물해지는 병이래요. 제대로 못 걷고 픽픽 넘어져서 병원에 간 거였는데, 첨엔 머리가 이상한 거라고 하더니 졸라 비싼 검사 받고 나니까 병 이름 알려주더래요. 계속 몸이 녹아서 마지막엔 순두부처럼 될 거라고. 제가 보기엔 지금도 그래요. 혼자 몸 뒤집는 것도 못 해서 방에 누워만 있거든요. 기열이가 밥도 먹이고 물도 먹이고 얼굴이랑 등도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그래요. 걔네 아빠는 조타수인가 뭐 그런 거 한다는데 한 번 배타면 석 달씩 집에 안 들어오거든요. 할아버지 돌보느라 기열인 소풍이고 수학여행이고 한 번도 안 갔어요. 걔네 집 가면 구린내 끝내줘요. 하루 종일 싸서 뭉개놓은 똥 냄새가, 아우 씨, 여름엔 파리랑 벌레 들러붙어서 완전 끝장인데 기열이는 그거 다 닦고 할아버지 엉덩이에 땀띠약도 발라주고 그래요. 학교에서 효행상도 받았어요, 치사하게 상품은 없었지만. 문상이라도 끼워주지 쪼잔하게. 암튼 슈퍼 가면 거기 아줌마가 기열이 효자라고 라면이랑 고추참치 캔이랑 우유랑 막 집어줘요. 가끔 돈도 주던데요. 기열이네 엄마가 옛날에 집 나갈 때, 차비 하라고 돈 빌려준 사람이 슈퍼 아줌마래요. 그래서 그런지 기열이네 아빠는 술 마시면 거기 가서 이것저것 깨부수고 그러는데, 어지른 거 싹 치우고 잘못했다고 비는 것도 기열이가 다 해요.
승호는, 그 새끼 졸라 족제비같이 생겼어요, 기열이는 곰 새끼 같은데. 반 여자애들이 이종석 닮았다고 승호 되게 좋아해요. 닮긴 뭐가, 얍삽하게 맨날 꼼수만 부리는 새낀데. 공부도 더럽게 못해요. 저는 그래도 수학 60점 받은 적 있거든요. 걔는 그거 반도 못 맞춰요. 근데 잔머리 하난 끝내줘요, 걔가. 예? 아뇨, 그런 적 없어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 새끼도 착하긴 해요. 승호네 아줌마 몸이 안 좋아서 휠체어 타고 다니거든요. 소아마비랬나 뭐랬나 허벅지랑 종아리가 제 팔목보다 더 얇아요. 되게 어릴 때부터 그랬대요. 우리 아파트에 무지 많아요, 어디 약간 모자라거나 아픈 사람요. 근데요 아저씨, 이거 그만 풀어주심 안 돼요? 손가락도 저리고 손목도 아프고 막, 죽겠는데. 도망 안 가요. 아저씨가 아까 문 잠갔잖아요. 집에 가는 길도 모르겠고. 애들이 그러는데 내 달리기 졸라 후지대요, 폼도 후지고 남들 걷는 것보다 더 느리다고 축구 할 때마다 욕먹는데요. 아아, 진짜 아픈데……. 승호요. 네, 고승호. 걔네 집이 303동 꼭대기 층이에요.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워낙 고물이라 툭하면 멈추고, 점검한다고 한 달에 서너 번은 꺼져 있고 그래요, 꼭대기 사는 사람들만 좆빠지는 거죠.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아줌마가 나다닐 수 없는 게, 아파트 앞이 쫘악 내리막길이거든요. 길도 엄청 꼬불꼬불해요. 저번 장마 때 휠체어째 뒤집어져서 굴러 내려가다 벽에 처박혀 죽을 뻔한 다음부터 승호네 아줌마 집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요. 이렇게 뚱그런 원반 같은 거에 바퀴 네 개 달린 의자 아세요? 아줌마 그거 타고 집 안에서만 굴러다녀요. 그래도 승호네 집이 제일 부자예요, 아버지 회사 다니고 누나도 돈 벌고. 우리 중에 엄마 아빠 다 있는 사람은 승호밖에 없어요. 그래서 좀 얄밉죠. 키도 쪼끄만 새끼가, 용돈 받았다고 나대면 막 쥐어 패주고 싶어요. 아줌마 봐서 때리진 않아요. 걔네 집 놀러 가면 아줌마가 샌드위치도 만들어주고 피자도 시켜주고 그러거든요. 승호네 아빠랑 누나는 돈 버느라 바쁘니까, 시장 가서 뭐 사 오고 형광등 갈고 하는 거 승호가 다 해요. 아줌마 팔 닿는 데가 딱 요기까지밖에 안 되니까 그 위에 있는 건 다 승호 책임이에요. 저번에 갔더니 걸레로 벽지랑 천장이랑 닦고 있던데요, 냉동실 청소도 하고 유리창도 닦고. 뭘 싫어해요? 내가 승호를요? 아니요, 친구라니까요. 그냥 가끔 눈꼴실 때가 있어서 그렇죠, 뭐. 다들 그렇잖아요.
교창이는, 예전에 친했던 애들 중에 영창이라고 있었는데 걔 동생이에요. 영창인 이 동네 안 살아요. 재작년인가 형들 쫓아서 집 나갔는데 형들 다 돌아오고 나서도 혼자 안 왔어요. 어디 조폭 재떨이로 잡혀갔단 얘기도 있고, 가출팸에 묶였단 얘기도 있는데 잘은 모르겠어요. 교창이가 애들한테 하도 맞고 다녀서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 건데, 지금은 워낙 친해져서 잘 지내요. 같이 집 나갔던 형들은…… 우리 동네 형들이 좀…… 경훈이 형요? 경훈이 형을 어떻게 아세요? 그 형 졸라 양아치예요. 동네 사람들 다 알아요. 여기 애들치고 형한테 명치 안 까여본 애 없을걸요. 실실 쪼개다가 갑자기 확 까는데, 진짜 숨도 못 쉬어요. 왜 까느냐고요? 그야 담배, 담배 뚫어오라고요. 가난한 동네라 애들 다 돈 없어요. 털어봐야 개털만 날리니까 심부름 시키고 심심풀이로 패고 그러는 거죠. 그러다 면상이 재수 털림 잡아놓고 한 달씩도 까요. 돈은 딴 동네 애들한테서 뜯어오거나 오토바이 훔쳐서 만들고요. 빈집털이 같은 것도 한다던데요. 그 형, 전과 있거든요. 전에 다니던 학교도 그래서 잘렸어요. 요즘? 요즘은 동네에 안 와요. 얼마나 안 왔느냐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참이에요, 슈퍼에서 말보로 레드도 팔 정도니까. 아, 그게, 경훈이 형이 말보로 레드만 피우거든요. 애들이 그걸 하도 쌔벼가니까 슈퍼 아줌마가 아예 그 담배를 들여놓질 않는 거예요. 심부름할 때마다 졸라 먼 동네까지 뚫으러 가야 되니까 오래 걸리고, 그럼 경훈이 형한테 반항한다고 막 까이고. 교창이가 특히 많이 까였죠. 경훈이 형이 각 잡고 까기 시작하면 일단 바지부터 벗기거든요. 교창인 바지마다 지퍼가 다 터졌었다니까요. 네? 바지요? 그건 그냥 벗기는 건데요. 뭘 만져요? ……왜요? 아뇨, 그냥 벗겨놓고 때려요, 도망 못 가게. 그게 다예요.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