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 소설 <8화>
……저기요, 형사님. 이건 진짜 이상하잖아요. 저는 애들이랑 축구 한 적도 없고, 아니, 축구 한 적은 있지만 7월 19일인지는 모르겠고. 더군다나 그땐 공터도 없었는데요. 아니, 축구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아니라요. 축구 한 적은 있는데, 네, 학교 끝나고는 거의 축구를 해요. 달리 할 것도 없고. 그럼 그날도 축구를 했을…… 그럼 축구는 그렇다고 쳐도요. 승호가 그런 말을…… 아뇨. 애들하고 욕을 한 번도 안 해본 게 아니라요. 네, 저기, 가끔 그런 얘기를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막, 미주 누나랑 그럴 거냐고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는데. 승호랑 저기, 네, 얘기해본 적은 있어요. 여자 얘기, 야한 얘기 한 적은 있는데…… 그렇죠. 네, 그럼 얘기해놓고 제가 기억 못 했을 수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승호가…… 아뇨, 제가 그런 적은 없어요. 진짜 없어요. 만약 말했다면…… 저나 기열이는 아니니까, 승호가 그랬을 거 같아요. 승호가 말했어요.
근데 옥상에서 미주 누나를 그랬…… 다는 건요. 그건 진짜 아닌데요. 형들이요? 형들이 뭘 하고 다니는지는 저야 모르죠. 경훈이 형…… 그 형은 진짜 나쁜 새끼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별 이유도 없이 형한테 맞았어요. 애들도 진짜 많이 맞았고요. 제 등에 북두칠성 찍힌 것도 그 형 때문이고. 교창이는 아직도 앞니 하나가 없고요, 기열이도 전에 싸대기 맞아서 고막 터질 뻔한 적 있어요. 네, 전과도 있고. 그렇죠, 나쁜 놈은 계속 나쁜 짓을…… 빈집도 털고 오토바이도 훔치고 애들도 패고 그랬으니까…… 미주 누나한테 나쁜 짓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승호요? 걔는 잘 안 맞았어요, 왜냐하면 걔는 우리 중에 돈도 있었고, 걔네 아빠 성격이 완전 불같아서 경훈이 형이 건드렸음 가만 안 있었을걸요. 네? 친했…… 던 건 아닌데. 승호랑 경훈이 형이 친했던 건 아닌데요. 걔도 가끔 맞았고. 바지요? 아뇨, 승호는 바지 벗긴 적 없어요. 아, 그런가. 그럼 둘이 친했나 봐요. 네. 나쁜 놈은 벌을 받아야죠. 저도 경훈이 형이 나쁜 짓 한 거 다 벌 받았음 좋겠어요. 동네에 다시는 안 왔으면 좋겠어요. 그 형도 맛 좀 봐야 돼요. 우리가 그 형 때문에 얼마나 죽을 맛이었는데 이제 와서 맘 잡겠다고 토끼고, 씨발. 그러니까 승호가 미주 누나를 그렇…… 게 한 건 경훈이 형이 시켜서…… 그럼 승호는 괜찮은 거죠? 경훈이 형이랑, 형들만 감옥 가는 거죠? 네, 정리됐어요. 그러니까 7월 19일에 승호가, 경훈이 형이 시킨 것 때문에 승호가, 미주 누나랑 애들 데리고 303동 옥상으로 올라갔어요. 담요는 교창이가 훔쳐왔고, 담배는, 승호가 샀어요.
우리가 미주 누나를 잡고 있으니까, 거기 환풍기 뒤에 숨어 있던 경훈이 형이 나왔어요. 경훈이 형이 미주 누나 바질 벗기…… 아, 진짜 이건 아닌데. 바지 벗겼던 건 그냥, 동네 애들 때릴 때, 우리가 심부름 늦게 했을 때랑 집합 시간 어겼을 땐데. 여자 바지 벗긴 적은 없거든요. 바질 한 번도 벗긴 적 없단 소리가 아니라요, 다른 애들은 벗긴 적 있는데, 네, 경훈이 형이요. 경훈이 형이 바지를 벗겼죠. 정해놓은 건 아니고요. 그때그때 눈에 띄는 애, 형한테 걸리면 아무나…… 그럼, 여자애가 걸릴 때도 있었…… 을까요? 헷갈려 죽겠어요. 네, 형사님이 말하는 대로만. 하라는 대로만 잘 외우면 백 점. 집에 갈 수 있어요. 제가 기억을 잘 떠올려서 기억만 잘하면. ……그럼 벗겼나? 아니, 벗긴 걸 봤다는 소리가 아니라요. 우리 바지 벗긴 적이 있으니까 누나 바지를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건데. 아 진짜…… 진짜요? 미주 누나가 그랬어요? 우와 씨발, 졸라 황당하네. 진짜 미주 누나를…… 우와, 미주 누나가 그렇게 말했다면서요. 그럼 맞나 봐요. 그런 것 같아요. 경훈이 형이, 그런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경훈이 형이, 미주 누나 바지 벗긴 것 같아요. 네, 벗겼어요. 제가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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