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란 소설 <젤다와 나> ⓒ전지은
|
하성란 소설 <1화>
나는 수취대의 레일을 따라 돌고 있는 짐가방들 사이에서 붉은색 내 트렁크와 김 선생의 검은색 트렁크를 찾고 있었다. 눈에 띄기 쉽도록 김 선생은 트렁크의 손잡이에 빨간색 손수건을 돌돌 말아 동여매 두었다. 시애틀을 시작으로 다섯 도시의 대학을 순회했다. 한 도시에서 길어야 이틀 머물렀다. 일정이 바듯했다. 예산이 바듯하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애틀랜타는 일정에 있는 마지막 도시였다.
도시를 거치는 동안 일행의 트렁크는 조금씩 불룩해졌다. 도시의 상징이 그려진 냉장고 자석이나 컵 같은 기념품들을 하나둘 구입했는데 나중에는 수취대의 레일에서 트렁크를 끌어 내리는 것도 힘에 부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나는 자꾸 내 가방을 알아보지 못하고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기념품들 때문에 조금씩 부피가 커지면서 형태가 바뀌는 가방을 몰라봐서가 아니었다. 곰곰 생각해봤는데 어쩌면 그건 일종의 거리감 같은 건지도 몰랐다. 나와 트렁크 사이의 거리. 나는 한 번도 트렁크를 그 거리만큼 떼어놓고 본 적이 없었다. 끌고 다니거나 눕혀 놓고 짐을 챙기거나 하는 식으로 트렁크는 언제나 내 몸 가까운 곳에 있었다. 수취대의 레일과 내가 선 자리까지의 거리는 기껏해야 1, 2미터였지만 그 정도의 거리로도 트렁크가 낯설게 보이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란 것도 내가 아닐는지 모른다. 김은 가끔 내게 소리쳤다. “너란 여자는 말야,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가방을 늦게 찾는 바람에 일행을 기다리게 했다. 한두 번 그런 일이 있자 아예 최는 나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가 내가 놓친 내 트렁크는 물론이고 김 선생의 트렁크까지 총 세 개의 트렁크를 챙기게 되었다. 덕분에 여행 중간에서부터 나는 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는 할 필요가 없던 말들이었다.
이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느라 나는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하러 나온 청년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네기 전까지 이곳이 스칼릿 오하라의 고향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곳은 애틀랜타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물론이고 앨라배마가 지척에 있었다. 300킬로미터 밖에. 물론 광대한 미국에서나 해당되는 말이다.
청년의 말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고 최가 맞장구를 쳤다. 최는 내 또래였다. 역시 남학생들의 관심사는 여학생들과는 달랐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건 중학교 때였다. 여학생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장면은 침대 기둥을 붙잡고 선 스칼릿과 그녀의 코르셋을 사정없이 조이던 흑인 하녀 마미의 모습이었다. 그때 스칼릿의 허리는 16인치였다. 다음 날 교실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단체 관람을 하고 온 여학생들의 화젯거리는 단연 잘록한 스칼릿의 허리였다. 그 뒤로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그때 받았던 강력한 인상은 좀처럼 뛰어넘기 어려웠다. 젤다 세이어에 관한 인상도 그렇게 내게 박혀 있다. 불꽃처럼 살다간 천재. 스칼릿 오하라와 젤다 세이어. 이 두 남부 여성 사이에는 50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여자들의 머리 길이는 짧아지고 과장되게 부풀린 치마로부터 해방되었다. 하지만 두 여성 모두 소문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다.
|
하성란(소설가)
|
하성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웨하스》, 《여름의 맛》과 장편소설 《삿뽀로 여인숙》, 《A》, 산문집 《왈왈》, 《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