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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9 09:49 수정 : 2013.11.28 10:21

하성란 소설 <2화>



청년이 몰고 온 자동차의 짐칸은 넓지 않았다. 간신히 트렁크 세 개를 포개 실을 수 있었다. 만약 이 도시에서 도시를 기념할 무언가를 구입하게 된다면 청년의 소형차로는 이 트렁크들을 다 싣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접어들었다. 애틀랜타. 내가 알고 있는 정보 가운데 하나는 인구의 40퍼센트가 흑인이라는 거였다. 우리가 거쳐온 어느 도시에서보다 흔하게 흑인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도시에서는 단 한 명의 흑인도 만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설마 그럴 리는 없었을 텐데.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코카콜라 마크가 달린 건물을 지나쳤다. 내가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또 한 가지, 이곳은 코카콜라의 본고장이었다.

차로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달리던 청년이 고속도로를 벗어나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한국 상점이 밀집한 곳이었다. 상가의 간판들 속에는 7, 80년대 유행했던 단어들이 많았다. 아마 그 무렵에 이민을 온 이들일 것이다. 아마도 이 간판들은 이 이름 그대로 오랜 시간 버틸 것이다.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는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고여 흐르지 않는 곳. 앨라배마의 젤다는 한시라도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내가 알아본 것에 의하면 지금 앨라배마의 모습 또한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나고 그곳에서 자라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앨라배마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인 식당과 한식 재료를 파는 마켓을 중심으로 한인 상권이 형성된 것은 기아자동차 공장이 자리 잡은 뒤부터라고 청년이 말해주었다. 현대자동차가 앨라배마에 공장을 세우면서 그곳도 많이 달라졌다. 기아와 현대 공장에서 생산되는 부품의 교차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점유율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앨라배마. 내게 앨라배마란 멀고 먼 곳이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포스터의 노래 때문이기도 했다.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노래를 부르면서 멀고 멀다는 것이 대체 얼마나 먼 것인지 늘 궁금했다. 어쩌면 물리적인 거리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증적으로 먼 곳도 있는 법이다. 너무 멀어 갈 수 없는 곳. 이를테면 내겐 김과 살던 그곳인지도 모른다. 90가구가 모여 있던, 한 동뿐이던 낡은 아파트. 전철을 타면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그곳을 나는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하일랜드 병원을 잠깐 나온 젤다는 앨라배마의 어머니 집에 머물렀다. 한때 그녀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던 촌구석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미스 앨라배마는 ‘동네의 미친 여자’가 되어 있었다. 하긴 젤다에게 지구 그 자체가 대합실이었을 뿐이다.

나는 청년에게 앨라배마의 스콧과 젤다의 집에 대해 묻고 싶었다.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 펠더 애비뉴 919번지. 젤다의 삶을 재조명한 소설을 쓴 질 르루아에 의하면 기념관이 된 젤다의 집 앞에는 큰 목련 나무가 서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청년은 쏟아지는 최의 질문에 대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말을 한 순간, 같은 코드라는 걸 알아채고는 청년을 놔주려 하지 않았다. 순두부찌개가 나오기도 전에 최는 청년의 신상을 다 꿰었다. 청년으로 보이던 청년이 사실은 서른을 넘긴 아이 둘의 아빠라는 것, 행사를 주관하는 대학의 강사라는 것, 이곳에 온 지 이제 3년째라는 것 등등. 이럴 때 최에게서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상대방의 사생활을 꼬치꼬치 물어보는 중년 여자들의 무신경함이 보이곤 한다.

순두부찌개 맛은 기대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맵기 조절용으로 따로 넣은 고추가 청양고추가 아닌 다진 할라피뇨라서 그런 것일까. 숟가락 끝으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본 김 선생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빙그레 웃었다. “귤화위지. 회수를 건너는 순간 탱자가 되는 이치…… 요즘은 교통이랑이 좋아서 고춧가루랑 마늘을 죄다 한국에서 공수할 텐데 왠지 모르게 제맛이 나질 않는 게 참 요상하지.” 최가 뜬금없이 김 선생에게 물었다. “탱자나무 우물가에로 시작하는 노래 있잖습니까?” “탱자나무?” 김 선생의 표정이 순두부찌개를 입에 떠 넣던 때처럼 묘하게 바뀌었다.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한 번도 탱자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오래전 김과 함께 낯선 동네를 거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 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담장 낮은 집의 마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흰 꽃이 피어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가 그 나무를 보고 탱자나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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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하성란의 <젤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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