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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0 09:39 수정 : 2013.11.28 10:22

하성란 소설 <3화>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대학가 안의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5시가 다 되어 있었다. 자동차 안에서도 김 선생과 최는 한동안 탱자나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잉크병에 꽂은 꽃처럼 시들어버린 누나야, 기억하십니까?” “음, 알지, 알아.” 둘의 대화는 이오덕 선생의 《탱자나무 울타리》라는 시집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요즘 농촌에서 탱자나무 울타리를 두르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청년은 운전을 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에게 앨라배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이러다가 앨라배마엔 가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앨라배마까지는 250킬로미터 남짓, 기념관이 있는 몽고메리 시까지도 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행사를 마친 뒤 잠깐 들를 만한 거리도 아니었다. 밭은 일정에 김 선생은 지쳐 있었다. 그렇다고 선생만 이곳에 남겨둔 채 앨라배마에 다녀올 수는 없었다. 최에게 말을 꺼냈다가 괜한 지청구만 돌아올지도 몰랐다. “여긴 미국이야, 미국. 옆 동네, 앞 동네 쉽게 가는 한국이 아니구.”

대학가 안에 자리잡은 숙소 역시 ‘홀리데이 인’이었다. 로비까지 트렁크를 가져다준 청년이 교정 안 깊숙한 곳에 남부의 전형적인 주택이 남아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속에서 보았던 긴 중앙 계단과 계단 위에서 좌우로 이어지던 회랑이 떠올랐다. “모셔다 드릴까요?” 청년이 물어보았다. 가보고 싶었다. 가볼까? 좋다고 말하려는데 최가 끼어들었다. 피곤해 보였다. “내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내일.”

앞선 도시들과 다른 점이라면 프런트를 비롯해서 호텔 곳곳에서 마주친 직원들 대부분이 흑인이라는 거였다. 도시를 돌면서 나는 새삼 놀랐다. 영화에서 대하던 그 미국이 아니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도시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사이렌 소리로 시끄러운 불안한 도시가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총기 사고가 일어나는 곳도 아니었다. 조용한 도시 속에 조용하게 ‘홀리데이 인’ 호텔들이 끼어 있었다. 서울의 홀리데이 인과는 달리 소규모였다. 중저가의 숙소에 걸맞은 아담한 크기의 로비와 로비를 장식한 소박한 장식물들, 우리가 들른 숙소들은 거기가 거기인 듯 엇비슷했다.

프런트의 여직원은 남부 특유의 사투리를 썼다. 커다란 입을 벌리고 웃을 때마다 치열이 고른 흰 이가 드러났다. 그동안 의사소통에 별 어려움이 없던 최도 바싹 긴장한 눈치였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넓은 땅덩어리라는 걸 그도 잠시 잊었던 모양이다.

객실 내부도 엇비슷했다. 희디흰 시트는 주름 하나 없이 반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풀을 먹인 듯 시트가 좀 뻣뻣한 느낌이었다. 문득 흰 시트에서 젤다가 입원해 있었을 병실의 침상이 떠오른다. 이 도시로 오기 전에 묵은 호텔의 침대 시트에서는 독한 락스 향이 났다. 냄새가 너무 독해서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청결해 보이기 위해 적량보다 독한 락스 물에 시트들을 빤 모양이었다. 누군가 시트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묻혀두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지우느라 락스의 양을 늘렸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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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하성란의 <젤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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