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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1 09:55 수정 : 2013.11.28 10:21

하성란 소설 <4화>



나는 창문을 열고 남부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젤다가 보고 자랐을 앨라배마의 하늘이 보고 싶었다. 비가 내릴 듯 초원 위로 낮게 깔리는 구름, 집들을 날려버릴 기세로 일어나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 언제 그랬냐는 듯 목화밭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그 모든 것이 다 앨라배마의 하늘이다.

나는 때때로 그녀가 맞이했을 그날 자정 무렵을 떠올렸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타고 불이 올라갈 즈음 뒤늦게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앞세우고 소방차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불은 그녀의 병실이 있는 꼭대기 층까지 집어삼킨 뒤였다. 노스캐롤라이나 애슈빌의 하일랜드 병원. 그 시간 모든 병실의 문은 밖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병실의 유일한 창문 역시 잠겨 있었다. 그녀는 그 층에 있던 다른 여덟 명의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1948년 3월 11일 자 신문 기사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마지막 기사들에서까지 그녀의 이름은 그녀의 남편 이름 뒤에 따라붙는다.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미망인 젤다 세이어가…….’ ‘유명 작가인 남편 스콧에 뒤이어 젤다 피츠제럴드가…….’ 그리고 젤다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언짢아했을 기사의 한 토막. ‘나이 스무 살에 남편과 더불어 절정의 명성을 누렸지만, 193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두 사람 모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라는 구절. 짧고 뜨거웠다는 점에서 그들은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그날 자정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이야기는 조금씩 살이 붙어 어느 순간 그 현장이 마치 눈앞의 일처럼 펼쳐지곤 했다. 그렇지만 어느 때건 나는 관찰자에 불과하다. 짐가방을 찾기 위해 수취대 레일 위를 지켜보지만 무심코 내 가방을 흘려보내 버린 듯한 기분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만 있다. 병원이 화염에 휩싸여 검푸른 하늘을 환하게 밝힐 때까지 속수무책 서 있기만 했다. 그녀가 있을지 모를 병원 꼭대기 층의 창들을 눈으로 훑으면서 말이다.

그녀의 고통을 나는 상상하지 못한다.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워서 나는 내 두 주먹을 꼭 쥐곤 했다. 다만 나는 그 시간 그녀의 의식이 다른 어느 때보다 명료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가 그 어떤 충격에도 깨지 않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기를 바란다. 신경증을 고치기 위해 주사한 약물에 취해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고 믿고 싶다. 불보다 먼저 유독 연기가 그녀의 의식을 빼앗아 갔기를 바란다. 그래서 죽음만큼은 편안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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