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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5 09:58 수정 : 2013.11.28 10:23

하성란 소설 <6화>



어느 모임에서나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동료들은 나를 알아보고 반색하며 다가오면서도 눈으로는 다른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김이었다. 김을 먼저 발견하고 나면 그의 언저리에 있을 나를 찾았다. 그럴 때면 쌍둥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둘 다 자리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꼭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동료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바로 그 질문들이었다. 상대방의 기막힌 이야깃거리를 훔쳐오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고.

끼리끼리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데 어떻게 그 말을 알아듣는 건지 삽시간에 좌중이 조용해지곤 했다. 안 그러는 척하지만 우리는 서로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던 거다. 팔짱을 끼고 등을 곧추세운 채로 앉아 있던 김은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라는 듯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다가 툭 한마디 던졌다. “너희라면 어떻게 하겠냐?”

우, 탄성이 터지고 술에 취해 기분이 고양된 누군가는 손뼉까지 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술자리는 금방 제 분위기를 되찾았다. 느닷없이 웃음이 터지고 가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누군가 술잔을 놓쳐 깨고 그 주변 사람들이 술 세례를 피해 황급히 흩어졌다. 이런저런 경황 중에 문득 고개를 들면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김과 눈이 마주치곤 했다. 여전히 그는 팔짱을 끼고 등을 편 채로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아닌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 그 밤 김이 내 뺨을 때렸을 때 그는 자신이 술에 취해 한 짓이었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술을 마셔도 김의 그 독특한 자세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자제력이 감탄스러우면서도 한편 나는 살금살금 그의 뒤로 가서 손가락으로 그를 밀쳐보고 싶은 충동이 일곤 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지도 몰랐다.

동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김은 눈빛으로 내 안부를 챙기곤 했다. 술 너무 마시지마, 누군가 널 귀찮게 하지는 않아? 일어나고 싶어?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잠깐 허공에서 우리의 시선이 엉켰다. 김이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나도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거 사랑싸움이야, 뭐야?” 앞에 앉아 있던 동료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의 말에 우, 다시 한 번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동료들의 눈에 띄었을 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들키고 말았다. 아니라고, 당황해서 얼버무리는데 문득 보니 김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하나둘 자리를 뜨고 새벽이 되어서야 모임은 끝이 났다. 엎지른 술이 말라 발짝을 뗄 때마다 신발 밑창이 바닥에 들러붙었다. 남은 우리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인적이 끊긴 인사동 밤거리를 걸었다.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비틀 인도의 양쪽을 갈지자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던 그들의 뒷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그리고 김의 가라앉은 듯 쉰 목소리와 사마귀처럼 꼿꼿하던 그 자세가.

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오래전 김과 살던 집을 본다. 열다섯 평이 될까 말까 한 그 집은 세로로 길쯤했다. 거실이라는 것은 아예 없었고 길쯤한 그 양 끝에 큰 방과 작은 방이 마주 보고 있었다.

김은 큰 방을, 나는 작은 방을 썼다. 해는 큰 방 쪽으로 졌다. 저녁이 될 무렵이면 김이 있는 방 쪽이 눈부시게 빛나곤 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길지 않았다. 빛이 사라지고 나면 그 방에는 더욱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언젠가 노크도 없이 큰 방의 문을 열었는데 어둠 속에서 김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가 켜놓은 노트북의 푸른 불빛이 고개를 묻고 있는 김의 머리와 어깨를 동그랗게 비추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 거니, 김?

김이 내 방으로 건너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 방에는 둘이 나란히 누울 만한 공간이 없었다. 가끔 김의 방으로 내가 건너갔다. 큰 방의 책상 위는 그가 메모해놓은 노트와 스크랩한 기사 조각들, 여기저기 붙여놓은 포스트잇으로 지저분했다. 풀기가 다한 포스트잇이 바닥에 떨어져 있곤 했다. 그 포스트잇 중 하나가 가끔 내 추리닝의 궁둥이에 붙어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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