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소설 <7화>
세상에, 스콧은 자신이 새로 발표한 장편소설의 제목을 ‘쓰레기 더미와 백만장자들’로 가자고 고집했다.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그건 정말이지 상상력이라고는 찾으려야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제목이었다. ‘트리말키오’라는 제목은 또 어떤가. 고대 로마의 작가가 쓴 소설 속 인물이라는데 노예에서 벼락부자가 된다는 설정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인 개츠비를 연상하게 했다. 하지만 1920년대였다. 우리는 가뜩이나 기성세대의 이념이라면 질색이었다. 그런데 고대 로마라니. 트리말키오라는 이름은 너무도 낡아빠졌다.
출판일은 다가오는데 스콧은 그때까지도 딱 떨어지는 제목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는 스콧에게 말했다. “뭘 고민하는 거야? 개츠비.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도록 개츠비라고 해.” 스콧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척했다. 결국은 내 말대로 할 거면서. 나는 그동안 스콧이 쓴 소설들을 읽어주었다. 나는 그의 첫 독자였다.
내가 카우치에 비스듬히 앉아 그가 쓴 초고를 읽는 동안 그는 내 주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손톱을 물어뜯고 바지를 추켜올리면서 내 표정을 살피기에 바빴다.
결국 소설의 제목은 나의 조언대로 《위대한 개츠비》가 되었다. 스콧이 이렇게 시간을 끈 건 그 제목이 결코 내 영감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믿게 하려는 거였다. 누구에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가 있다면, 스콧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는 절대로 쓸 수 없는 부류에 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만 해도 그렇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들로 바뀌어 있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인물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챘다. 스콧과 내가 만나 알았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데이지’. 두말할 나위 없이 그녀는 바로 나였다.
남편이 병원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을 하는데 의사에게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데이지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 딸이라서 기뻐요. 바보 같은 여자로 자라주면 좋겠어요. 그게 제일이죠. 예쁘고 머리 나쁜 여자가 되는 게.”
그게 스콧이 바라는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데이지가 말한 것처럼 예쁘고 머리 나쁜 여자애였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스콧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고향에서 마음에도 없는 고리타분한 남자와 결혼했을 것이다. 스콧이 나를 내가 꿈꾸던 뉴욕으로 데려와 주었다. 파티와 춤이 끊이지 않던 곳. 우리는 어디에서나 주목을 받았다.
스콧이 장편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내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 사랑은 기껏 한 달여 이어졌을 뿐이지만 이후로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그를 잃은 뒤에야 나는 깨달았다. 스콧과 나. 우리는 결혼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스콧이 나를 고향에서 데리고 도망쳐준 대가로 나는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다. 그가 혼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용했을 뿐이다.
내 사랑을 스콧은 내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자신의 소설에 썼다. 그다운 일이었다. 데이지와 개츠비의 사랑. 그렇다면 소설 속에서 스콧은 잠시 데이지의 남편인 톰 뷰캐넌이 된 것일까? 스콧은 때때로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했다.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닉 캐러웨이, 그리고 개츠비. 잘난 척하고 속물근성이 있는 면은 정말 개츠비와 똑 닮았다. 다 좋아, 그렇지만 스콧. 난 당신이 소설에 썼던 것처럼 내 미모를 이용하는 여자가 아니야. 남자에게 소곤거리며 이야기해서 상대가 자기 쪽으로 몸을 기울이게 하는 수법이나 쓰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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