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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7 10:19 수정 : 2013.11.28 10:23

하성란 소설 <8화>



김 선생은 느릿느릿 시를 읽었다. 중학교 때 서울로 진학하며 고향을 떠났다는데 고향 사투리를 완전히 버리지 못해 억양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시를 읽을 때면 그 억양이 더욱 도드라졌다. 대체 고향이란 무엇일까. 그 뒤로 선생은 서울에서 60년 가까이 살았다.

낭독회가 열린 대학의 홀은 천장이 매우 높았다.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천장으로 부유해서 홀이 마치 커다란 울림통 같았다. 장식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사용하는 책상까지 오래된 듯했다. 어디에서 나는지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나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앞에서 부채꼴처럼 펼쳐진 책상들은 계단처럼 조금씩 높아져서 홀 맨 윗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얼굴도 또렷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거쳐온 다른 도시의 대학들에서보다 한국 유학생이 눈에 많이 띄었다. 김 선생이 홀로 들어설 때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른 것도 그들이었다. 김 선생의 시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그들 중 대부분이 선생의 시에 밑줄을 그어가며 시를 공부했을 것이다.

학교 측 진행자는 선생을 한국의 계관시인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다시 한 번 환호했다.

학생들은 진지해 보였다. 여기 모인 학생들 중 김 선생의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언젠가 김 선생은 시라는 것은 오해가 빚어질 때 이상하게 더 아름다워지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너무 시적이에요!” 선생의 말에 한참 후배가 감탄해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다들 웃고 넘겼는데 무슨 일인지 김만 뾰족했다. “시인에게 그런 찬사는 다소 무례한 감이 있지.” “자자, 오늘같이 기쁜 자리에서 제가 노래 하나 하겠습니다.” 자칫 썰렁해질 분위기를 바꾼 건 최였던가? 그런데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최의 말처럼 기쁜 자리였을 텐데.

김 선생과의 이런 긴 여행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는지 모른다. 어떤 감흥이라도 있었던 걸까, 마지막 몇 행에서 김 선생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학생들의 질의응답과 기념촬영 등 행사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선생은 물론이고 최의 얼굴도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선생님, 아까 울컥하시는데 저도 덩달아 울컥했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하면 좋을 텐데, 최에게 살짝 눈을 흘겼지만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선생님, 이 도시가 좀 이상합니다. 마틴 루서 킹의 고향이라서 그럴까요? 아까 보셨죠? 흑인 여학생이요. 우리말을 떠듬떠듬하던.”

그 홀에 유일하게 한 명의 흑인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낭독회가 끝난 뒤 우리에게 와서 서툰 한국말로 “좋아요, 나는 아주 좋아요”라고 말했다. 가지런한 흰 이가 매력적이었다. 거리에서 수많은 흑인들을 보았던 것과는 달리 대학 안의 흑인 학생은 생각처럼 많지 않은 듯했다.

김 선생이 부끄러워했다.

“나도 나이가 드는 모양이야.”

최가 연극배우처럼 과장되게 손을 내저었다.

“누가요? 선생님이요? 아까 보셨잖아요, 학생들 반응이요. 선생님 젊으십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김 선생은 소년처럼 배시시 웃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최에게 물었다.

“아, 최 선생. 내 어제부터 계속 걸리는 게 있었는데 말야.”

혹시 무슨 결례라도 한 건 아닐까, 잠깐 최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나를 흘낏 쳐다보고는 ‘내가 뭐 잘못했어?’라고 눈으로 물었다. 최는 다 좋은데 말이 너무 많은 게 흠이었다. 하지만 내가 김과 헤어졌을 때 최는 끝까지 비밀을 지켰다.

공항까지 우리를 마중 나왔던 청년이 다가오는 바람에 둘 사이의 말이 잠깐 끊겼다. 최가 과장되게 청년을 알은체했다. “어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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