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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9 10:26 수정 : 2013.12.03 15:13

하성란 소설 <10화>



먼 곳을 보듯 김 선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중학교에 진학한다고 그 겨울 어머니와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던 서울이었지요. 명동을 지나다 그 노래를 들었을 겁니다. 최 선생, 아시려나? 지글거리는 축음기. 잡음에 섞여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지요. 촌구석에 살다 서울에 왔으니 신기한 게 얼마나 많았겠어요? 사방을 두리번대며 혼이 반쯤 빠졌는데 어머니 눈에도 정말 한심해 보였던 모양이에요. 성정이 대쪽 같기로 유명하신 분이었는데 아무 말씀도 없이 제 팔뚝을 꼬집었지요.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았는데, 눈물에 맺힌 명동 거리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정말 손맛이 매웠는데, 세월이 이렇게 흘렀군요, 세월이…….”

숙소 쪽으로 걸었다. 오해가 풀린 뒤부터 김 선생 곁에 최가 있었다. 앨라배마 이야기는 언제 꺼내야 할까. 내일모레는 새벽같이 공항으로 가야 할 것이다. 이곳에서 얼마나 먼 곳일까, 앨라배마는. 내가 아는 정보라고는 애틀랜타 공항에서 세 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왔다면 그만큼 거리가 또 멀어졌을 것이다.

두 사람이 도란도란 주고받는 이야기가 건너왔다.

“그런데 최 선생. 내가 궁금한 건 그거예요. 왜 최 선생이 다른 나무 다 놔두고 하필 탱자나무로 기억하고 있느냐는 것.”

“그렇죠. 선생님. 하필 탱자나무지요. 그게 좀 오래전 이야긴데요. 고등학교 3학년 전국 백일장이 끝난 자리였을 거예요. 서로를 의식하다 보니 전국의 유명하다는 선수들은 얼굴을 몰라도 이름 정도는 꿰고 있었죠. 어쩌다가 몇이 종로 쪽으로 몰려와 낮부터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요, 그때 한 녀석이 일어나 이 노래를 불렀죠. 뭐, 어린 게 저딴 노래를 부르나 싶었는데 말이죠. 선생님, 솔직히 그 애가 좀 부럽더라고요. 아니, 좀 두려웠죠. 한참 전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목이 긴, 저랑은 비교도 안 되었던 데다가요.”

“옳거니.”

김 선생이 추임새를 넣었다.

“노래 제목도 몰랐어요. 제가 서울 출신이라 탱자나무니 앵두나무니 그런 분별력도 없었고요. 맨 본 게 가로수인 플라타너스뿐인지라. 어떤 나무면 어떠냐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제가 그래요, 선생님. 그런데 그게 한번 그렇게 굳어지니까 다른 나무면 안 되겠는 거예요. 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사달이 나도 탱자나무 아래여야 하는 거죠.”

“옳거니. 그런데 그 학생이 그 노래를 어떻게 알았을까? ……누굽니까, 그 선수?”

“예? 아, 그게, 그게…….”

최가 우물거리더니 뒤를 돌아 흘깃 나를 보았다. 앵두나무를 탱자나무라고 잘못 알았던 학생, ……혹 김인가? 조금 간격을 벌리려는데 최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게 너무 오래전이라서요. 너무 오래전…….” 말끝을 흐리던 최가 정색하듯 말했다.

“아이고 선생님, 죄송합니다. 자꾸 오래전 오래전, 선생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닌데.”

김 선생이 웃었다. 웃음의 끝이 잔기침으로 이어졌다.

최도 김을 만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김 쪽에서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최는 물론이고 나도 아직 그의 영향 아래 있다. 그가 잘못 만든 탱자나무 그늘 아래.

어느 집 마당에 심겨 있던 나무를 탱자나무라고 알려주던 김이 떠올랐다. 나는 한 번도 최가 들었다던 그 노래를 들은 적은 없다. 김은 왜 앵두나무를 탱자나무로 잘못 알았을까. 그날 나는 왜 그에게 어떻게 탱자나무를 아느냐고 물어보지 않았던 걸까.

내 궁둥이에 붙어온 포스트잇이 주방과 내 방문 앞에서 발견되곤 했다. 단어 혹은 한 줄의 문장은 빤한 문장이었다. 김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없어진 메모를 찾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날 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날 이후로 종종 김과 나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은.

점퍼 차림의 한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와 공원의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었다. 남자가 자전거를 몰고 떠난 얼마 뒤에 공원의 모든 비둘기들이 죽었다. 이것이 그때 내가 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김의 단편에서 훨씬 풍성해졌다. 내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남자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면 김은 일인칭 시점으로 그 사내가 되었다. 김은 자전거를 타고 공원으로 가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었다. 하나둘 비둘기들이 쓰러지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 광장 가득 널브러진 비둘기의 사체와 간신히 목숨이 붙어 절룩이며 걷는 비둘기, 날아오르려다가 하늘에서 그대로 낙하하는 비둘기까지,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김은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훔쳐갔다고 비난했다. 그는 사마귀처럼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었다. 그가 너무 자신만만해서 나는 혹시 내가 그랬을 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었다. 내 궁둥이에 붙어온 이야기 중에 나의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저 앞으로 홀리데이인의 현관이 보였다.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이 낮게 가라앉았다. 검은 새털처럼 구름이 넓게 깔렸다. 저 하늘 끝은 앨라배마의 하늘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곳은 벌써 비가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고향의 하늘이 보인다. 코발트색이었다가 금방 검은 물감을 푼 듯 어두운색으로 변하는 하늘. 아니, 그런 과정 없이 바로 폭우가 내린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하늘이다. 천지를 진동하며 거센 바람이 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변하는 하늘. 나는 앨라배마의 하늘을 그대로 닮았다. 평온한 듯 보이지만 언제 그랬냐 싶게 마음속에서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소리를 지르고 길거리 여자처럼 웃어댔다. 그때 나는 가장 예뻤다. 그 하늘 아래를 벗어난 뒤부터 나는 늙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를 늘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스콧과 나, 우리는 너무 빨리 정상에 올랐다. 그때부터 우리에겐 내리막길이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그 길을 내려가느냐였다.

스콧은 내 삶을 훔쳐 글을 썼다. 내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늘 우리의 화려한 삶을 유지해줄 돈 때문이라고 나를 달랬지만, 스콧. 내게 필요한 것은 그런 삶이 아니었어. 내가 가지고 싶었던 건 작은 책상이 있는 나만의 방이었어.


자정 무렵,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달이 지구와 가까워진 것처럼. 달빛으로 창살과 창살 사이의 그림자가 훨씬 더 넓어졌다. 새장에 갇힌 새들이 펄럭이는 것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밖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일어나 그 틈에 한쪽 팔을 넣어보았다. 팔이 거뜬히 그 틈을 통과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 몸의 반쪽을 넣는다. 침대 위에 한 여자가 죽은 듯 누워 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주었다. 내 머리와 함께 남은 한쪽 팔을 마저 통과시킨다. 창살 밖으로. 이제 나는 자유다.

청년이 나를 앞지르며 말했다.

“선생님, 저녁엔 학교 측에서 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라면 넌지시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이라는 행복한 대답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빨리 오라며 최가 손짓을 했다. 이번에도 또 김 선생과 최를 기다리게 했다.

앨라배마. 이렇게 멀어서 ‘멀고 먼 앨라배마’였던 모양이다. 내게도 너무 먼 앨라배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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