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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4 19:53 수정 : 2006.07.14 19:53

정영무 경제부장

편집국에서

지난 2월 워싱턴에서 있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 선언에서 미국 쪽 로버트 포트먼 무역대표부 대표는 협상이 올해 말까지 마무리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국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과 바레인의 협상을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모델로 삼는다고 화답했다. 미국과 바레인은 두 차례 협상을 한 뒤 협정에 조인했다. 김 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한국과 미국 사이에 태평양을 가로질러 경제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14일 끝난 2차 협상의 결과로 보면 두 나라 협상 대표들은 너무 일찍 삼페인을 터뜨렸다. 워싱턴 1차 협상에 이어 서울에서 열린 2차 협상은 사실상 파행으로 끝났다. 지금으로서는 미국의 시간표에 맞춰 협정이 타결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진 상태다. 협상 속도는 예상보다 늦고, 협상장 밖의 강한 맞바람이 협상 테이블을 압박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대한 한국 안의 격한 시위, 커지는 반대 여론은 예고된 것이었다. 협상의 시소가 처음부터 한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4대 선결조건이라는 것부터 그랬다. 우리 정부는 알토란 같은 스크린쿼터, 쇠고기 등을 내주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미국은 빈손으로 들어섰다. 미국은 무역대표부가 의회에 진행상황을 수시로 보고한다. 이해 당사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대외 협상과 함께 대내 협상을 병행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비공개 약속을 내세우며 대내 협상은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대외 협상에만 주력한다. 우리 국민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언론은 미국 무역대표부와 의회 사이트를 뒤져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다. 이쯤 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아무리 선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결정적인 것은 한·미 두 나라의 협상력·경쟁력에서의 비대칭성이다. 약은커녕 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협상은 이제 ‘춤은 추지만 나아가지는 않는’ 형국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 협상단의 견해차도 크지만, 설사 좁혀졌다고 해도 한국의 반대여론이라는 제3의 대표부와의 지난한 협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만 앞세운 한국 정부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서두른 결과다. 정부나 협상을 지지하는 쪽은 복병을 만난 듯 애가 타고, 반대 편에서는 뭔가에 씐 듯 협상을 강행하려는 정부에 속이 터진다.

그렇지만 소란 속에서 건강성과 역동성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독선의 미덕’이랄까?

민주적으로 논의가 진행됐다면 이렇게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심판에게 선수는 물론 관중이 일어나 항의하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심판의 독선이 관중에게 일치된 학습효과를 가져다주는 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싸고 떠오른 많은 논란은 실은 우리 사회가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적 의제들이다. 국가란 무엇이며 시장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성장과 개방은 절대선인가. 문화·농업 등 특수산업의 가치는 어떻게 자리매김돼야 하나. 공급자 편익에 비해 소비자 후생은 얼마나 중요한가. 나아가 사회통합적 시장경제나 동북아 공동체는 후순위로 밀려야 하는가?

매국노·쇄국론자라는 표현까지 동원되지만, 거품을 걷어내면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우리 사회가 한단계 더 나아가고 성숙하는 방책을 백가쟁명식으로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뜨거운 참여의 열기를 담아내는 게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그렇게 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도 풀릴 것이다.


정영무 경제담당 편집장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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