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8.11 20:57
수정 : 2006.08.1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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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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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금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전쟁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강 건너 불’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건 한반도의 평화 기회를 훔쳐가며 시작된 전쟁이고, 한반도로 연장되는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될 가능성이 있다.
2000년 10월22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을 방문한다. 그해 6·15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이 방문에서, 그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요즘 문제가 되는 북한 미사일 문제뿐만 아니라 북-미 수교 등을 일괄타결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북한을 찾지 못했다. 그해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조지 부시 당선자 쪽이 반대한데다, 클린턴 자신도 북한을 방문하기는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격화하는 중동정세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미국 역대 정권이 추진해온 중동평화협상의 결정판은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체결한 오슬로 평화협정이다. 이 협정은 팔레스타인에 독립국가 건설을 허용하는 대신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을 포기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그러나 2년 뒤인 95년 11월 협정의 주역이던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파 청년에게 암살당하며 협정은 휴짓조각으로 변한다.
곧이은 96년 총선에서 강경우파인 리쿠드당이 집권하고, 오슬로 평화협정을 부정하던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로 취임한다.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철군은 지연되고 오히려 이스라엘 정착촌이 확대되다가, 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중동평화회담은 파국을 맞는다. 그해 9월 팔레스타인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아리엘 샤론 당시 리쿠드당 당수의 도발적 방문에 반발하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2차 인티파다(인민봉기)가 발발한 이후 팔레스타인 정세는 이스라엘의 봉쇄와 강경 진압으로 일관되며 지금까지 이른다.
당시 북한을 방문해 무르익던 한반도 평화 구축의 대미를 장식해야 할 클린턴은 중동을 전전하며 임기 막판을 허비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이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단지 시기적 문제는 아니었다. 오슬로 협정에 대한 이스라엘의 노골적 태업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압박과 봉쇄로 일관하는 정책과 맥락이 같다. 이는 이스라엘 집권세력과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90년대 중반부터 추구한 ‘중동체제 변화’의 논리적 연장선에 있다. 폴 월포위츠 등 유대인 네오콘의 핵심들은 이미 96년 네타냐후를 위한 <클린 브레이크>라는 연구보고서에서 “이스라엘 주변국들의 정권교체야말로 이스라엘의 안보에 가장 도움이 된다”며 이를 위해 오슬로 협정에 연연할 필요가 없고 무력에 기댈 것을 조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라크전 발발 직후인 2003년 3월21일 ‘대통령의 꿈: 정권교체가 아닌 중동지형 변화’라는 기사에서 “친미 민주적 중동지역은 이스라엘과 네오콘에 뿌리를 둔 목표”라고 전했다. 중동체제 변화 전략은 서방의 가치를 따르지 않는 모든 세력을 악으로 규정하는 네오콘의 세계관에서 출범한다. 북한도 그 연장선에 오를 수밖에 없다. 부시가 클린턴의 방북을 막은 데서 잘 드러난다. 유대교의 이분법적 선악관에 바탕한 이 전략은 사실 이스라엘 정치인 나탄 샤란스키의 작품이며, 부시도 그의 저술에 무척 감명 깊어 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등을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반대해야 한다. 이 전쟁들이 일으킨 쪽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끝난다면, 그 폭풍은 곧 한반도에 밀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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