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03 18:26
수정 : 2006.12.0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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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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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중동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대결과 전쟁에서 협상과 평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이후 중동은 세 가지 큰 축에서 대결과 전쟁을 벌여왔다. 이라크에서는 전쟁, 팔레스타인에서는 봉쇄와 소탕, 이란에 대해서는 대결과 위협이 증폭돼 왔다. 테러 위협을 척결하고, 중동에 민주주의를 전파하겠다는 게 미국의 목표였다. 결과는 참담한 실패, 역효과의 확산이다.
첫째, 테러는 더욱 확산됐다. 전쟁터인 이라크와 봉쇄당한 팔레스타인은 테러의 최적 공간이 됐다.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테러의 ‘대미국 전쟁’으로 전도됐다. 둘째, 중동의 안정은 더욱 멀어졌다. 이라크전은 이슬람 양대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쟁을 촉발했다. 이는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셋째, 대량학살무기의 확산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라크 침공은 이란의 핵개발을 더욱 자극했다. 이란 핵개발은 주변국에도 핵 유혹을 키울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도 중동의 기존 지정학적 구도가 깨졌다. 미군 주둔에도 불구하고 모든 권위와 질서가 실종된 이라크는 지금 블랙홀처럼 중동의 기존 질서를 빨아들이고 있다. 국내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통제력을 잃고, 지역적으로 이란이 영향력을 급속히 넓히고 있다.
미국 외교위원회의 리처드 하스 의장은 최근 〈포린 어페어스〉에서 중동에서 미국시대 종료를 선언했다. 그는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으로 시작된 현대 중동에서, 미국은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 80년 동안, 특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20년 동안 전일적인 미국의 시대를 구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 1차 이라크전이 중동에서 미국의 전일적인 지배 시대를 활짝 열었으나, 2차 이라크전이 미국 시대의 종말을 재촉한다며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한탄했다.
“중동을 통치하는 자가 세계를 통치한다. 전 세계에 이해관계를 가진 자는 중동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전 옥스퍼드대학의 역사학자 앨버트 후라니의 말은 미국이 직면한 재앙의 강도를 전한다. 중간선거 이후 현실주의자들이 복귀하며 미국은 협상과 평화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미국의 한계가 증명됐기 때문이다.
9·11이 터진 지 20여일 만에 발표된 4개년 국방검토(QDR)는 중동과 한반도에서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해 승리한다는 ‘양대 전쟁 전략’(윈윈 전략)을 더욱 공격적으로 전환했다. 선제공격에다가 적국의 정권교체까지 덧붙였다. 이라크전이 대표적이었다. 미국은 양대 전쟁 전략의 또다른 대상인 북한에 대해서도 여차하면 이 전략을 현실화할 태세였다. 하지만 지금 미군은 이라크에서 승리는 고사하고 병영 안에 갇혀 있다.
6일이면 공식 발표될 이라크연구그룹의 이라크 철군안, 이라크 안정을 위해 악의 축인 이란·시리아에 대한 협조 요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휴전 등 미국은 중동정책을 대폭 선회했다. 국제여론에 콧방귀 뀌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의 공격에도 휴전을 고수하는 것은 시사적이다. 부시 시절 내내 중동과 한묶음으로 가던 한반도정책도 당연히 급선회했다. 부시는 “김정일과 같이 평화협정에 사인하겠다”고까지 나선다.
중동 평화가 진전된다면 북-미 협상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여론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중동보다 문제가 간단한 한반도 평화 진전은 역으로 중동 평화 구축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문제는 북한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강력히 참가해야 한다는 등 아직도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이라크에 가보라.
정의길 /국제팀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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