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14 17:17
수정 : 2006.12.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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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편집3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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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년 반 넘는 도쿄 생활을 끝내고 복직 문제로 남편보다 반 년 앞서 귀국하며, 본의 아니게 ‘시한부 이산가족’ 생활을 하는 중이다. 애들은 남편과 한 명씩 나눠 맡았다. “아빠가 외롭다”는 설득과 “한국 가면 일본 학교처럼 못 논다”는 으름장이 통했는지, 4학년인 큰아이는 아빠와 함께 돌아오기를 선택했다. “어떻게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기로 하셨어요?” 이런저런 송별회 자리를 하며 우리 가족의 결정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주변 사람들이 적잖음을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바빠도 아이는 엄마가’라는 생각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유엔과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2015년까지 한국의 인구 증가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은 육아지원 시스템의 부재를 탓할 일이다. 하지만 제도가 갖춰진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개개인의 사정을 살펴주는 ‘섬세한’ 제도란 없다. 의식과 문화가 따라가지 않으면 금방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약속이 겹칠 때 양보하는 건 대개 엄마다. 아빠들은 애 찾는 것만으로 끝나지만, 엄마들은 퇴근 길에 아이를 찾고, 오는 길에 학교 준비물을 사고, 옷도 못 갈아입고 부엌에서 저녁상까지 차린다.
많은 이들은 양성평등을 ‘여성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와 함께 좁혀져가는 건 ‘아빠의 자리’다. 딱히 여성주의자도 아닌 남편이 아이와 있기로 한 이유도 “이번이 큰아이와 관계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이었다. 아빠의 기대와 타고난 무뚝뚝함 탓인지, 우리 집 큰아이는 유난히 아빠를 ‘두려워’했다. 가족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아빠들이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는 건, 본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불행이다.
여성들의 출산기피로 지난해 인구가 사상 처음 감소하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일본에선, 올 2월부터 7개월 연속 출산율이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경기회복이 배경이긴 하지만, 주간지 <아에라>는 최근의 출산붐에 “28살과 35살이 있다”고 전한다. 불임문제가 공론화되며 31~34살 사이에 “어쨌든 35살까지는 낳자”라는 생각이 번졌다는 게 첫번째 분석이다. 두번째는 일본의 28살이 처음으로 중·고교 기간 내내 가정과목을 남녀필수로 배운 이들이라는 것이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장수하는 오락프로그램에서 일본 최고의 아이돌그룹 스마프가 앞치마를 두르며 ‘요리하는 남자가 멋있다’라는 인식도 퍼졌다. 99년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남편은 아기를 안고 “육아를 하지 않는 남자는 아빠라 부를 수 없다”는 포스터에 등장했다. 지금의 28살은 아내의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함께 하는 것’으로 자연스레 인식하기 시작했고, 협력적인 남편의 존재가 아내들의 출산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후쿠이현은 지난해 일본에서 출산율이 유일하게 오른 곳이다. 이곳의 맞벌이 비율은 전국 1위다. 현 쪽은 “열심히 일하는 여성은 출산·육아에도 의욕적”이며 “경제 합리성이 있다면 중소기업도 육아지원에 적극적”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성의 진출이 늘어 출산율이 준다는 일반적 인식과 정반대다.
물론 아빠와 아들만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온갖 ‘지시사항’을 문서로 남겨놓았는데도 남편은 허둥대며 국제전화를 걸어오기 일쑤였다. 아빠가 약속 있는 날이면 아이 혼자 도시락을 사다가 저녁을 때우고 잠든다. 그래도 이전엔 내게만 매달리던 아들이, 인터넷 화상전화 건너편에서 아빠 목에 자연스레 팔을 두르고 있다. 아이사랑을 남편에게 빼앗긴 것 같아 질투도 나지만, ‘아빠의 자리 찾기’에 협조할 수밖에.김영희/편집3팀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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