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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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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오늘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북핵 6자 회담이 재개된다. 약 13개월 만이다. 6자 회담이 단절된 동안, 한반도 상황은 언제 꺼질 줄 모르는 살엄음판 같았다. 위기는 북한의 핵 폐기와 미국의 대북 불가침 의사를 함께 명시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부터 시작됐다. 미국 정부는 성명이 나온 직후인 20일, 북한이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를 통해 불법 돈 세탁을 한 혐의가 있다며 금융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북한은 7월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 실험으로 맞서며 위기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핵 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는 즉각 대북 경제제재를 결의했고, 미국 중국 일본 등도 개별 차원의 제재에 착수했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도 제재의 칼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다. 비료와 식량 지원을 끊었고, 금강산 관광에 대한 정보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사업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의 11·7 중간선거 참패 이후 대외정책 수정 움직임이 나타나고, 중국의 중재가 빛을 발하면서 끊긴 6자 회담의 다리가 간신히 복구됐다. 이로써 폭발의 위기를 회피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개인적으로 더욱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폐성’(閉城)의 위기에 몰렸던 개성(開城)이 목숨을 보존한 것이다. 조금만 더 대결 국면이 길어졌다면, 여론과 국내외 정세의 흐름이 개성공단 사업을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1일, 단지를 가로지르는 삼봉천의 물길처럼 겨우 희미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개성공단을 ‘아침 서울-점심 개성-저녁 서울’의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시범단지 안의 시계공장과 봉재공장을 돌아보는 중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세계화의 신봉자인 프리드먼은 최근의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2005년, 도서출판 청해)에서 ‘델의 충돌예방 이론’을 내놨다. 이전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는 맥도널드의 상징에 빗대어 ‘황금 아치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두 이론의 핵심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얽힌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가 충돌예방 이론의 제목을 ‘맥도널드’에서 ‘델’로 바꾼 것은, 세계화의 정도가 ‘빵 가게’에서 ‘컴퓨터 공장’ 수준으로 격상된 최근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델 같은 주요 글로벌 공급 사슬의 일부분인 두 나라는 그들이 같은 글로벌 공급 사슬의 한 부분인 이상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 … 그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적시에 배달하여 그로 말미암아 향상된 생활 수준을 즐기기를 바란다.” “이라크, 시리아, 남부 레바논, 북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이란은 명백히 어떠한 주요한 글로벌 공급 사슬에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나라들은 어느 때고 폭발하여 세계의 평평한 속도를 늦추거나 뒤집을 수 있는 문제 지역이다.” 여기서 그는 경제적인 상호 의존도가 클수록 분쟁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그런 관계망에 들어 있지 않은 북한 등의 폭발을 우려했다.그러면 과연 개성공단은, 맥도널드와 델이 세계화 속에서 하는 것처럼, 남북 사이에서 충돌을 예방하는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시점에서 말한다면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화벌이에 열중하고 있는 1만여명의 북쪽 노동자들 모습에서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는 ‘남북간 충돌 예방’의 무한한 가능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오태규 편집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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