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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국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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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에 등장한 신보수주의는 한국 우익들이 닮고 싶어하는 모델이다. 80년대 이후 ‘좌파들의 사상적·문화적 공세에 시달리다가 결국 권력까지 탈취당했다’고 생각하는 한국 우익들이 요즘 이들 신보수주의자들처럼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새해 들어 한나라당 대선 예비주자인 박근혜 의원은 신보수주의 문을 활짝 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자신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네오콘은 요즘 이라크전 실패 등으로 동네북이 됐지만, 분명 한국 우익들에게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특히 세파와 시류에 따라 정치적·사상적 입지를 여반장으로 바꾸는 한국의 기회주의 세력한테는 더욱 그렇다. 좌파에서 전향한 네오콘의 전력 때문이다.
네오콘은 사실 자신들을 우익 혹은 보수라고 자처하지 않았다. 특히 네오콘이란 용어를 극도로 싫어한다. 네오콘의 거점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객원연구원인 조슈아 무라브치크는 <포린폴리시> 최근호에 이라크전에서 네오콘의 실수를 반성하는 글을 쓰며 이렇게 말한다. “좌파들은 우리를 민주당에서 축출한 뒤 ‘자유주의자’라는 상표를 훔쳐갔고, 우리에게 ‘신보수주의’라는 딱지를 성공적으로 붙였다. … 네오콘은 지금 ‘극우’, 일부에게는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됐다.”
이는 그들의 뿌리인 ‘이상주의’ 때문이다. 1930년대 뉴욕시립대학을 중심으로 한 트로츠키주의자 등 좌파 성향의 유대인 지식인들인 어빙 크리스톨, 다니엘 벨 등이 그들의 선배다. 이들은 스탈린주의라는 현실사회주의가 자신들이 신봉한 이상주의적 목표를 훼손했다며, 반공주의 좌파로 변신한다.
이런 배경은 ‘정치체제의 성격이 대외정책 등 국가 행동을 규정한다’는 네오콘의 가장 큰 특징을 배태했다. 민주주의 체체의 국가야말로 미국에게 최선의 안보이자 이익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동인은 도덕이나 이념이 아니라 군사적·경제적 이해관계이며, 상대국의 체제에 상관 없이 그 이해관계를 관철하면 된다’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주류 대외정책이던 현실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며 무한대결을 추구한 로널드 레이건 정권에서 기지개를 폈다.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어, 중동 전역의 체제를 바꾸겠다며 이라크전을 벌인 조지 부시 정권 대외정책의 중심이 됐다. 주류 보수인 ‘현실주의 우파’와 대비해 ‘이상주의 우파’로 부를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소련과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자신들의 성공에 도취되며 전세계 국가를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절대주의에 빠진 것이다. 그 결과 이라크전이라는 미국 대외정책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불렀다. 나름으로 역사를 가지며 이상주의를 실천하려 한 네오콘의 재앙은 한국 우익에게 무슨 교훈을 줄 것인가?
한국에는 지금 ‘자유주의’ 혹은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상표까지 붙이는 우익·보수들로 넘쳐난다. 과거에는 좌파이고 ‘민주화 투쟁’을 했는데, 지금은 ‘우익’ ‘보수’로 ‘커밍아웃’했다고도 한다. 동성애자 등 사회의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떳떳하게 공개하는 행위인 ‘커밍아웃’은 한국에서 ‘시류와 대세에 영합하는 전향’이란 의미로 타락했다.
미국의 네오콘은 적어도 기회주의 세력은 아니었다. 시인 김수영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민중의 생명력을 노래했다. 그 시구는 이제 한국 우익들을 채워주는 기회주의 세력들에게 적용해야 할 것 같다. ‘일제 시대는 근대화이고, 5·16은 혁명’이라며 앞서나가는 기회주의 세력들로 폭주하는 한국 우익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정의길/국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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