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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3 19:31 수정 : 2007.01.23 19:41

한겨레 1월18치 1면 머릿기사(왼쪽)와 19일치 20면.

편집국에서 독자에게


한-일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여름의 일이다. 중국산 마늘 수입이 크게 늘어나 마늘값이 폭락하자 농민들이 정부에 긴급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 발동을 요청했다. 무역위원회는 피해 조사에 나설 방침을 밝혔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동이 걸렸다. 2000년 7월에 타결된 한-중 마늘협상 합의문 부속문서에 ‘세이프가드 연장을 2년 반으로 제한’한다는 조항이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그때까지 ‘국가 기밀’이었다.

이 ‘국가 기밀’이 뒤늦게 새어 나가자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농민들은 숨긴 협상 내용 자체보다 조항을 숨긴 것에 더 분노했다. 정부 안에서는 농림부가 “문제의 조항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하고, 청와대는 “대통령은 그런 합의 사실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발표하는 등 ‘네탓 공방’만 벌어졌다. 외교부는 뒤늦게 이렇게 고백했다.

“마늘 협상 합의문을 만들 당시에는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처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탓에 부속서 내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마늘 교역 관련 협상을 한다면서 중국의 통상보복 위협을 무마하는 것과 50만 마늘농가의 터전을 맞바꾼 셈이다. 밀실협상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차관급 고위공직자 세 사람이 옷을 벗었다. 정부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통상외교를 약속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19일 〈한겨레〉와 〈프레시안〉이 보도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관련 기사(〈한겨레〉 18일치 1·3면, 19일치 2·20면)들이 발단이다. 기사의 출처는 기사에서 밝힌 대로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6차 협상을 시작하기 전 국회특위에 보고했다가 회수한 ‘대외비 문건’ 두 가지다.

기사가 나간 뒤 정부 일각에서 발끈하고 나섰다. 대통령 직속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지원위원회(위원장 한덕수)는 “문건 유출자와 이를 공개한 언론은 분별없는 행동의 결과 협상 상대국을 이롭게 한 데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거칠게 반응했다. 보수언론들도 덩달아 ‘국익’을 들먹이며 문건 유출자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보도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몇 가지 짚어보자. 우선 문건이 기밀이냐 아니냐는 논란이다.

문건에서 드러난 새로운 사실은 △무역구제를 지렛대 삼아 자동차나 의약품 같은 다른 분야에서 주고받기식 협상을 한다 △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신금융 서비스’ 개방을 수용한다 △국내 금융정보를 미국 등 제3국에서도 가공·처리할 수 있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것 등 크게 세 가지다.

핵심은 ‘무역구제를 지렛대 삼는다’는 전략이다. 문건을 보면 무역구제 분야의 우리 쪽 핵심 요구 사항은 이미 물건너 간 것으로 돼 있다. 미국이 비공식 고위급 회담에서 법개정 사항이라 수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렛대 전략을 내세운 것은 법개정 이외 별로 실효성도 없는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하며, 자동차나 의약품 등 다른 민감한 분야의 협상에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이미 지난해 12월 5차 협상 때부터 양쪽 협상단 이 똑같이 시도하는 낡은 것이다. 단지 문건을 통해 협상단의 의도가 공식화했을 뿐이다.

박순빈 산업팀장
문건에는 공식 협상과 별도로 비공식 고위급 협의를 활성화한다는 전략도 담겼다. 더욱이 이런 협상 진행 방향에 ‘서로 공감했다’는 표현이 있다. 미국은 이미 훤히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한겨레〉 취재진은 한-중 마늘협상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 좀더 통상관료들의 밀실외교를 철저히 감시하고 국민에게 어떤 득실이 있을지 제대로 보도해 알리지 못했던 탓이다.

마지막으로 국익 논란과 관련해 한겨레 기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취재보도 준칙’의 한 대목을 여기에서 미리 밝힌다.

“현존하는 긴급하고 명백한 사유가 전제되지 않는 한, 우리는 국익을 이유로 우리가 취재한 진실과 사실의 보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박순빈 산업팀장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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