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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우/온라인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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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8년 전 자신의 병원에서 태어난 네쌍둥이의 부모에게 “아이들이 잘 자라 대학에 가면 등록금을 대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의 마음 씀씀이는 정말 따뜻했다. 출산 뒤 소식이 끊겼던 쌍둥이의 부모를 ‘추적’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자기들만의 약속’을 지킨 이 회장의 선행은 단순히 ‘있는 자의 여유’로 볼 수 없는 감동이 살아 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네쌍둥이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왔는지, 또 고교 졸업과 동시에 어떻게 모두 대학에 진학했는지, 그들 또래의 자식이 있는 부모 마음으로 알고 싶었다. 자식 하나도 버거워하는 세상에 네 명 모두 반듯하게 키운 ‘비결’도 엿보고 싶었다. 수소문해 황슬·설·솔·밀(18) 네쌍둥이 가운데 셋째인 솔과 전화통화를 했다. “미안해요, 지금 스키장에서 알바 중이거든요, 알바 시간 끝나면 전화 드릴게요.” 예비 대학생인 숙녀의 씩씩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가난한 광부의 딸로 태어난 네쌍둥이의 삶은 가난했지만 건강했고 활기찼다. 네 명 모두 태권도 공인 4단. “덩치가 작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어요. 호호호.” 태어날 때 작게 태어난 탓일까? 아니면 또래들보다 잘 먹지 못한 탓일까? 키가 1m50이 조금 넘는다. 솔은 출생 당시 1.7㎏으로 일주일간 인큐베이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당당하다. 고교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실업고를 다닌 첫째와 넷째는 전교 1~3등을 유지했고, 인문고를 다닌 둘째와 셋째도 중상위권을 지켰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고려해 고교 졸업 뒤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하려 했던 첫째와 넷째는 수원여대 간호학과에 들어갔다. 둘째와 셋째는 강릉 영동대 간호학과에 수시합격했다. 셋째는 과 수석으로 합격했다. 공부뿐 아니다. 모두 악기를 잘 다룬다. 고교 동아리 등에서 배운 피아노(슬), 플루트(설), 전자기타(솔), 드럼(밀) 실력은 용인시 청소년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을 정도다. 네 자매는 기초생활 수급자인 부모의 부담을 줄이려 고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동네 슈퍼마켓과 패스트푸드점에서 방과 뒤 일했다. 번 돈을 용돈으로 쓴 것뿐 아니라 모았다. 현재 각자 통장에 200여만원씩 저축해 놓았단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데는 주변의 도움이 컸다. 제왕절개 수술 때부터 병원비는 ‘면제’받았다. 분유회사와 기저귀회사에서는 분유와 기저귀를 협찬했다. 동네 태권도장 관장은 한 명분의 교습비만 받고 네 명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었다. 학습지 선생과 컴퓨터 학원장도 한 명분만 받았다. 동네 미장원 사장은 지금까지 무료로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다. 그래서 넷 모두 머리 모양이 똑같다. 무료 미용뿐 아니라 이들에게 80만원의 대학입학 장학금도 주었다. 정말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 보여준 따뜻함이다. 동네 반장 일을 하며 교회에 열심인 어머니 이봉심(54)씨의 지극정성과 광부에서 목수로, 지금은 막노동하는 아버지 황영권(54)씨의 자식사랑,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들을 도와준 주변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네 자매의 오늘을 만들었으리라. “환자에게 친절한 간호사가 될 겁니다. 그래서 돈 없는 할머니들이 건강해지게 도와드리고 싶어요.” 네쌍둥이의 ‘대변인’ 격인 솔의 거침없는 포부다.네 자매는 3년 전인 고교 1학년 때부터 한 달에 한 명당 1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 이유는? “지금까지 도움을 받아만 왔어요. 언젠가는 우리도 남에게, 아니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잖아요.” 아! 콧등이 시큰해진다. 이길우/온라인부국장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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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병원 이길여 회장과 장학금 지급받은 네쌍둥이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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