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2.01 17:15
수정 : 2007.02.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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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봉/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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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난 주말 민족문학작가회의(약칭 작가회의)의 정기총회는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다. 단체 명칭에서 ‘민족’을 빼려던 집행부의 계획은 일부 회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쳐 일단 좌절되었다. 4시간여의 지리한 공방은 급기야 고성과 거친 언사로 치달았고, 총회는 명칭 변경을 논의하기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안을 대신 통과시켰다.
이날 총회가 파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며 마무리된 데는 물론 ‘민족’이라는 표현을 단체명에 유지할 것이냐 버릴 것이냐를 둘러싼 견해 차이가 큰 구실을 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집행부와 지역 회원들 사이의 소통 부재, 그리고 일부 언론의 사태 개입과 왜곡이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킨 측면이 없지 않다.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들은 명칭 개정이 총회 안건으로 상정되었다는 사실을 신문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며 항의했다. 집행부가 각 지회 지부장들에게 공문을 보내 명칭 변경에 관해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지시를 내렸음에도 그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이다.
어떤 회원들은 더 나아가 집행부가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기까지 했다. 사실 작가회의 집행부는 이번 명칭 변경 계획이 사전에 언론에 노출되면 부작용이 생길 것을 우려해 최대한 보안을 유지한 가운데 일을 추진해 온 터였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기사가 먼저 나가고, 몇몇 보수 신문은 사설을 통해 작가회의를 친북 좌파 단체로 매도하는가 하면 주제넘는 ‘훈수’까지 두고 나서는 바람에 일이 더 꼬이고 말았다. 작가회의 총회가 이날 일부 언론의 왜곡된 사설에 대해 단체 차원의 공식 대응을 하기로 결의한 것은 언론의 부당한 개입에 대한 회원들의 분노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제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한 의견 수렴과 논의를 거친 다음 회원들의 총의를 확인하는 일이 남았다. 총회와 그를 전후한 작가회의 홈페이지 게시판의 공방을 통해 찬성론과 반대론 양쪽의 논지는 충분히 개진된 셈이다. 명칭 변경을 둘러싼 논란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금언을 잘 새길 일이다.
1974년 11월18일 유신독재에 항의하는 문학인 101인 선언 발표와 함께 작가회의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약칭 자실)가 출범했다. 6월항쟁 직후인 1987년 9월17일 지금의 이름인 민족문학작가회의로 확대 개편했지만, 작가회의의 연혁은 1974년 11월18일을 공식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계산법에 따라 창립 30돌이었던 2004년 무렵부터 명칭 변경에 관한 논의가 공론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87년의 상황과 지금 상황이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릇 시간은 흐르고 세상 만물은 변화하는 법이다.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흐름을 거스르며 고여 있다가는 자칫 썩을 수도 있다.
총회를 전후해서 접촉해 본 작가회의 회원들은 다수가 명칭 변경에 찬성하고 있었다. 물론 자유·실천과 민족·민중이라는 작가회의의 기본 정신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어찌 보면 허울에 불과한 이름에 매달리기보다는 구체적인 작품과 실천으로써 그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닐까. ‘민족’이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개념이어서가 아니다. 그 이름을 붙들고 있느라 치러야 할 비용이 필요 이상으로 막대하다면, 거기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창의적인 몸놀림을 생각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당대의 화두로 등장한 ‘87년 체제의 극복’에도 합당한 선택일 것이라 믿는다.
최재봉/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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