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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15 17:36 수정 : 2007.02.15 17:36

김영희/편집3팀 기자

편집국에서

얼마 전 한 기사에 ‘대한민국은 4대 마트 공화국’이라는 제목을 단 적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통계를 인용해 서울·수도권에 대형 마트 절반이 집중되고 4대 대형마트가 전체의 70%를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몇 해 동안의 외국생활 끝에 돌아오니 뭐가 가장 바뀐 것 같냐는 주변의 물음에 언제나 했던 대답 가운데 하나는 ‘마트 공화국 같다’라는 것이었다.

“정말 도쿄보다 물가가 비싸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귀국 뒤 처음으로 대형 마트에 가서 두부·오이 같은 먹거리 가격을 보고 솔직히 충격 먹었다. 도쿄에선 우리로 치면 동네 슈퍼보다 훨씬 크고 마트보다는 작은 규모의 집 근처 대형슈퍼를 주로 이용했다. 식습관의 차이 때문이긴 하지만 도쿄에선 대파도 한 대씩 따로 판다.(국민소득 차이는 무시하고) 단가만 비교하면 일본이 아직 비싸다. 하지만 맞벌이나 식구 수가 적은 이들이 한자루씩 사다놓은 야채를 먹지 못해 버리고 얼린 고기에 냉동칸이 꽉 찼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 한국이 결코 싸다고 할 순 없다. ‘1+1’이라는 표시가 붙은 물건을 보면 ‘어차피 쓸 소모품인데’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카트에 집어넣게 된다. 도쿄에선 대부분 대형슈퍼들이 상시적으로 요일별 제품할인을 해 계획적인 장보기를 할 수 있었다. 월요일은 빵, 화요일은 고기, 토요일에 가면 달걀 10개에 100엔 …. 여기선 마트에 1주일이나 열흘에 한번꼴로 가는데도 2~3일에 한번 장을 보던 도쿄보다 한달 생활비가 늘었다. 선택의 폭도 의외로 좁다. 대형마트의 야채 코너에는 유기농 외엔 찾기 어렵다. 유기농을 원하는 이들에겐 좋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는 건 문제다. “아끼려면 마트를 끊어야 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올 만도 하다.

시간은 또 어떤가. 마트 쇼핑은 도시인들에겐 주말 행사다. 아이들 놀이터까지 갖춰놓고 천천히 쇼핑하시라 한다. 2~3개층에 달하는 광야 같은 매장을 돌면 2~3시간은 뚝딱이요, 갔다오면 쇼핑에 지쳐 늘어지기 일쑤다. 유치원 애들은 ‘물건 사기’ 체험 프로그램으로 마트에 견학간다. 이마트 홍보과 김자영 과장은 “요즘 아이들은 ‘쇼핑한다=이마트 간다’로 알 정도”라 말했다. 땅이 넓은 나라도 아닌데 자전거로 가면 물건을 싣고 오기가 불가능해 마트엔 차를 끌고 가게 된다.

돈·시간 낭비와 함께 우리의 욕망도 불어났다. 땅덩이가 커진 것도, 소득이 확 오른 것도 아닌데 불과 몇 해 사이 한국인의 평균 소비욕구는 한단계씩 커졌다. 예전엔 30평대 아파트가 인기였지만 요즘 최고의 경쟁률은 40평대다. 이전엔 1500cc 차면 만족했지만 이젠 30대 중반만 넘어도 ‘1800cc 이상은 사야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왕창 물건을 사다 쟁여놓으니 김치냉장고를 둘 이상씩 갖춰놓고 냉동고로 쓴다는 집도 적잖다. 이마트가 지난해 말 내놓은 소비 트렌드 조사는 “중산층·서민층이 필요성보다는 고급스러움·디자인성·고품질의 가치형 상품을 선호한다”며 “2만달러 시대형 소비”라 했다. 삶의 질 잣대가 ‘물질소비’다.

대안이 있냐고? 생협이나 생산지를 찾아다니는 건 보통 사람들에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나 또한 퇴근하면 밤 11시까지 여는 마트를 이용하게 된다. 다만 쇼핑의 목적이 뭔지, 집이나 차의 구실이 뭔지 가끔 떠올릴 뿐이다. ‘아껴 사야지’라는 마음에 간 마트에서 벌이는 소비행태가 얼마나 자기모순적인지 생각하려 노력할 따름이다. 작지만, 그런 의식이 모인다면 거대한 거품의 ‘마트 공화국’도 조금은 움찔하지 않을까.

김영희/편집3팀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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