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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훈/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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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난 8일 뉴욕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담 취재를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실을 찾았다. 취재 때 만난 한 한국인 관광객의 분노에 찬 얘기가 내 발길을 그곳으로 돌리게 했다. 미술관 2층 중국관과 인도관 사이에 48평 규모의 한국실. 30여분에 걸쳐 돌아보는 동안 원래 통로였던 이 방을 가로질러 중국관이나 인도관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몇몇 관람객을 빼곤 찾는 이조차 없었다. 한국관이라는 말 대신 굳이 한국실이라고 적는 것도 그런 연유다. 한국실 개관 한 달 뒤인 1998년 7월에 들렀을 때 목격했던 한국실의 북적대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당시엔 세계 3대 박물관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들머리에 한국실 개관을 알리는 펼침막이 걸리고 떠들썩했다.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등 국보급 문화재와 한국과 일본·미국의 개인 소장품들을 전시해 중국·일본과 다른 한국 문화를 소개했다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워싱턴으로 차를 몰고오는 내내 늘어난 숫자만 내세우는 국외 박물관 한국실의 초라함, 주제 없는 전시물이 주는 답답함을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국외 한국실의 대표격인 메트로폴리탄 한국실의 현실은 10년 전 제네바 방문길에 우연히 들렀던 인류학 박물관에서 느꼈던 참담한 기억까지 일깨웠다. 별도의 사무라이 전시관까지 갖춘 널찍한 일본관 입구 통로에 옹색하게 자리잡은 한국실은 ㄱ자형 유리로 막은 벽면에 갓과 한복, 북한 화가가 그린 한국화 등 20여점이 전시물의 전부였다. 한가운데엔 소공동 지하 관광상품 가게에서 샀음직한 왕과 왕비 인형이 버티고 있었다. 한동안 망연히 지켜보고 있자니 다가온 박물관 직원이 “박물관 예산도 문제지만, 한국 쪽에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며 말을 건넸다. 제네바 주재 한국대표부 쪽과 임대전시 등을 추진해 보라고 권했지만, 그 박물관의 한국 관련 전시가 나아졌다는 얘기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지난 1월에 미국 휴스턴 미술관 한국실이 개관했고, 5월엔 워싱턴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한국실이 들어선다. 현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대영 박물관, 파리의 기메동양 박물관 등 미국과 유럽 유명 박물관에 설치된 한국실은 50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대형 박물관들도 몇몇 소품을 제외하고는 내세울 만한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소한 창피라도 면하려면 개관 뒤의 사후관리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늘어난 한국실 수를 자랑하면서도, 뒤돌아서서 뒤늦게 생겨 전시공간이 좁을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따위의 변명은 무의미하다. 좁은 공간이라도 알찬 전시품이 많고 찾는 이들이 많다면 박물관 쪽이 스스로 확장하려 할 것이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알리기는커녕 중국·일본 문화의 아류나 변방 문화라는 편향된 인식을 굳히는 정반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장기적인 기획 전시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제에 맞춘 진품 문화재의 국외 나들이 같은 걸 적극 장려해야 한다. 소장품이 적은 한국실들을 위해선 수장고에 잠자고 있는 문화재들의 장기 대여를 통해 한국실의 전시수준을 높이고, 기증과 구입을 통해 박물관 자체 소장품들을 늘려가도록 꾸준한 지원과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한국실을 담당할 큐레이터 채용해야 하므로 그 재정적 후원도 권장해 나가야 한다.한류의 세계화를 외치기 이전에, 한류의 뿌리가 우리의 전통문화와 문화유산들이란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국 문화를 찾는 세계인들 사이에 섞여 국외 한국관에서 자랑스런 우리 문화재들을 보고 싶다. 류재훈/워싱턴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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