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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4.19 18:36 수정 : 2007.04.20 08:22

이길우 /온라인부국장

편집국에서

벌써 2년째다.

서울 후암동의 중복장애아 보육원인 ‘가브리엘의 집’과 탁아소 ‘빛나리 공부방’에 한 달에 두 번씩 과자 상자가 배달된 지가. 매월 15일과 30일 동네 슈퍼마켓 주인은 이 두 곳에 과자를 배달한다. 아이들의 이틀 주전부리 분량이다. 기부자는 ‘익명’이다. 슈퍼마켓 주인은 “누가 보내는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보육원과 탁아소 운영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기부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아이들은 보름마다 과자 파티를 하며 즐거워한다.

기자는 수소문해 그 숨어 있던 기부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전화로 수차례 설득했다.

어렵사리 만난 그는 일흔을 눈앞에 둔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나라에서 매달 생활비 37만원을 받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였다. 혼자 살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고, 지금도 어지럼증 같은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였다.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뒤 그의 곁을 떠났다. 철저히 버림받았다. 그는 나이 먹어 일도 못하는데다 보살펴 줄 가족조차 없는 ‘불행한 노인’인 셈이다.

할아버지는 후암동 쪽방촌에 한 달 10만원의 사글세를 내며 살고 있다. 두 평 남짓한 그의 방은 대각선으로 누워야 발을 뻗을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은 무료급식으로 해결한다. 나라에서 받는 37만원 가운데 보육원 아이들에게 줄 과자값으로 12만원을 지출하고, 10만원을 방세로 내면 15만원이 남는다. 그 돈으로 약값과 생활비를 쓴다. 교회에 헌금도 한다.

할아버지는 일찍부터 고아가 됐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다섯살 때 폐결핵으로 숨졌고, 아버지 역시 6·25 전쟁통에 숨졌다. 고아원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할아버지는 부산에서 밀수를 하는 ‘주먹’으로 거칠게 살았다. 경찰과 총격전까지 벌이며 도망다니다가 자수해 군대를 다녀와서는 남대문 시장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했다.

그러나 뇌출혈로 쓰러지며 가족은 해체됐다. 부인은 “어떻게 대소변을 받아내고 사느냐”며 가출해 버렸다. 아들은 병원에 아버지를 팽개친 채 소식을 끊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퇴원한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확’ 불질러 버리고 자신도 죽겠다며 휘발유를 넣은 페트병을 목에 건 채 거리를 하루종일 방황했다. 달리는 전동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지하철 정류장을 서성이기도 했다.

죽을 ‘용기’가 모자랐던 할아버지는 빗물이 새는 쪽방에 누워서 곡기를 끊고 죽음을 기다렸다. 밤새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지 않은 채 모진 삶에 마침표를 찍으려 했다.

“과자를 왜 보육원에 보낼 생각을 했나요?” 순간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눌한 목소리가 떨린다.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지는 해를 보면서 무척이나 배가 고팠어. 과자를 정말 먹고 싶었지. 쪽방에서 죽기를 기다리던 어느날 동네 탁아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소리가 마치 참새가 짹짹거리는 것 같았어. 너무 듣기 좋았지. 그리고 어린시절 미치도록 먹고 싶었던 과자라도 그들에게 주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일어났지.” 눈물이 흐르는 뺨을 훔치는 손에 경련이 인다.

할아버지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신청을 했고,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조각내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기 시작했다. 김두환(69) 할아버지는 행복하다. 표정도 좋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도와줄 수 있어서 너무 고마워!”

이길우 /온라인부국장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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