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승동/문화부문 선임기자
|
편집국에서
이달 초 신문사 안팎 여러분의 도움으로 조형균(78)이란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교회에서 부르는 노래들 중에 일제군가를 베끼거나 가사만 바꿔 단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전통 한지를 보관·전시하는 ‘계성종이역사박물관’ 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그분은 고령인데도 기억력이 뛰어났습니다. “내가 이상해. 곡조를 한 번 들으면 다 기억해요. 중학교 때 엿들은 다른 반에서 부르는 노래도 기억하거든.” 선대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 출신인 그분은 역사왜곡을 바로잡으려는 열정 속에서 몇 년에 걸쳐 찬송가에 스민 일제 잔재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지난 8일 ‘성스런 찬송가가 일제군가였다니…’라는 제목의 문화면 기사는 이렇게 나가게 됐습니다. 기사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전화와 전자우편 등을 통한 강력한 항의도 많았습니다. “찬송가와 복음성가도 구분 못하시오?”(김광수씨) “기사에 들어 있는 곡 중에 찬송가는 한 곡도 없습니다. …널리 부르고 있다고 했으나 요즘 것이 아닌 이전의 것으로 요즘 교회에서 부르지 않습니다.”(신동호 목사 등) 항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문제의 노래들은 복음성가이지 찬송가가 아니라는 것, 그런 노래들이 지금은 널리 불리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기사가 기독교 반대세력에게 기독교를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애초 조씨의 연구결과를 ‘감식’해 주고 해당 노래 음원(녹음된 노래)까지 제공한 노동은 중앙대 창작음악과 교수에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노 교수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현행 찬송가집에 그 노래들이 들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 교회 현행 찬송가들은 주로 미국에서 ‘복음성가’로 불리다가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본래 복음성가가 바로 찬송가다.” 게다가 <부럽지 않네>와 <허사가>는 여러 복음성가에도 나오지만 1950년, 54년, 61년, 69년, 71년에 재단법인 대한기독교서회(편집 겸 발행인 김춘배 찬송가합동위원회 대표)가 발행한 <찬송가> 제90장에 <예수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 교수는 또 91살 노모가 지금도 교회에서 그 노래를 찬송가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목사들이 교회를 맡으면서 그런 노래들을 많이 부르지 않게 된 건 사실”이라고 노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기사를 쓰기에 앞서 찬송가와 복음성가의 미묘한 차이에 좀더 신경쓰고, 지금 교회에서 문제의 노래들이 어느 정도 불리고 있는지 더 정밀하게 조사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합니다. 그런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입니다. 특히 저희가 기사에서 일제군가를 베낀 찬송가와 복음성가들이 ‘널리’ 불리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진실을 찾아가는 노력이 아닐까요? 조씨나 노 교수는 “문제가 드러난 이상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해 왔습니다. 저희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애초 기사를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하나 더 덧붙이겠습니다. 이번 기사를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에 쏟아진 매도나 욕설에 가까운 수많은 댓글은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특히 저희 기사에 점잖게 항의를 해오셨던 분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인용하기도 부끄러운 수준 이하의 수많은 댓글들이 발신자 자신을 포함해 사이버세계 전체 참여자들을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