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27 21:19
수정 : 2012.06.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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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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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편집국장이 광고 문제까지 언급하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회의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의 태안 기름유출 사고 사과 광고가 한겨레에만 빠지면서 침묵만 하고 있기 어렵게 됐습니다. 저한테 전화를 걸어와 한겨레의 입장을 물어보는 분도 꽤 많습니다.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명확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은 결코 삼성을 원망하거나 울분을 토로하자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이번 사태를 이용해 독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는 더욱 없습니다. 다만 평범한 상식과 논리에 기대어 옳고 그름을 한번 짚어보자는 뜻입니다.
삼성이 저희 신문에 광고를 중단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는 간명하고도 당당합니다. “편집권이 한겨레에 있듯이 광고집행 권한은 광고주에게 있다.”
이 ‘거룩한 명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내 돈 내가 쓰는데 아무도 왈가왈부하지 말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온전히 그것을 소유한 자의 주권사항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명제는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태롭고 공허해 보입니다.
‘권한’의 행사에는 언제나 삼감과 두려움이 수반돼야 합니다. 아무리 권력이 자기 것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습니다. 신문의 편집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관계에 대한 가혹한 자기검열, 합리성과 공정성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은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의 첫째 의무사항입니다.
한겨레의 삼성 사태 보도에 대해 당사자인 삼성은 “정도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아마 삼성의 잣대는 조·중·동 등 다른 신문들인 듯합니다. 언론 전체의 ‘기사 평준화’를 희망하는 삼성의 시각으로 보면 한겨레가 비정상적이겠지요. 하지만 외부 제3자들의 평가는 다릅니다. 다른 신문들의 축소지향적 보도를 비판하는 글은 많이 보았으나, 한겨레의 지나침을 질책하는 글은 과문한 탓인지 별로 접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에 어찌 잘못이 없겠습니까. 저희 신문 1월22일치 33면에 실린, 삼성 건물을 칼로 찌르는 그림은 분명히 ‘오버’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곧바로 뉘우치고 사과하는 글을 내보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삼성이 사실 그동안 저희 기사에 대해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기사가 잘못됐다면 정정을 요구하고,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소송을 거는 등의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제대로 된 이의제기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실력 행사에 들어갔습니다.
광고 중단이 징벌인지, ‘전향’을 요구하는 압력인지, 다른 언론사 견제용인지, 아니면 답답한 심정에서 나온 화풀이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광고 중단 사태는 자본과 언론의 관계를 원점에서 재조명해 볼 기념비적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삼성은 그냥 묵묵부답입니다. 최소한의 논리적 설명도 없이 고작 ‘광고집행 불가침권론’에 매달리는 것은 ‘세련된 삼성’답지 않게 너무 옹색하고 구차한 태도가 아닌가요.
한겨레 편집국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하신 분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 마음의 출렁임과 울분, 비분강개가 없겠습니까. 특히 삼성중공업 광고를 싣지 않은 것은 한겨레 독자들에 대한 명백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흔들리지 않으려 합니다. 분노에서 비롯된 기사의 더함도, 광고를 의식한 기사의 덜함도 없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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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편집국장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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