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남기 경제부문 선임기자
|
편집국에서
서울지방국세청에는 조사4국이란 곳이 있습니다. 1~2국이 법인, 3국이 개인을 맡고 있지만, 4국은 담당 영역이 없습니다. 중요 사안에 대해 ‘심층’ 조사를 벌이는 특별 조사국입니다.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를 받아 세무조사를 벌이는 ‘특명 조사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 조사4국이 일주일 전부터 <한국방송> 프로그램 외주제작 업체들의 장부를 뒤지고 있습니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김종학프로덕션, <겨울연가>로 잘 알려진 팬엔터테인먼트도 들어 있습니다. 프로덕션으로 불리는 외주제작 업체는 직원 30~40명에 매출이 고작 몇십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들입니다. 더욱이 팬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성실 납세자로 기획재정부 장관 표창까지 받고 2년 동안 세무조사를 면제받은 업체입니다. 과연 얼마나 엄청난 혐의가 있기에 그런 업체들에 국세청의 최정예 조사인력을 투입한 것일까요. 이명박 정권의 미움을 사고 있는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압박하기 위한 ‘표적 세무조사’라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국세청뿐만이 아닙니다. 감사원은 이미 한국방송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고, 지난 주말에는 검찰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나선 이유가 참 희한합니다. 국세청과의 소송에서 한국방송이 법원의 조정에 합의한 것이 업무상 배임이라는 것입니다. 배임으로 회사가 손해를 봤다면 금전적 이득을 본 쪽은 누구일까요. 세금을 징수한 국세청이지요. 과연 실익이 있는 수사인지 궁금합니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방미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부실한 쇠고기 협상을 서둘러 타결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그런 것들을 배임으로 본다면 비슷하지 않을까요? 과연 이것이 상식적인 수사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촛불시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몇 차례 민심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런 ‘사과 모드’와는 딴판입니다. 미운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사정기관들을 총동원하고, 반대로 자기 사람 심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촛불시위 전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이팔성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낙점됐을 때 금융권에서는 “이제 평화가 찾아왔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금융권 인사를 뒤흔드는 돌출 변수가 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권력의 뜻을 받들어 모시지 않고 그를 이사장 후보에서 떨어뜨린 증권선물거래소는 지금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고작 나온 혐의가 골프 접대비를 많이 썼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수사 방향을 납품 리베이트 비리로 틀어 주변 업체들을 뒤지고 있습니다. 해당 업체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셈입니다. 감사원·국세청·검찰 등을 동원해 권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뒤를 캐는 것은 정말 치졸한 일입니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제기하는 권력의 사유화보다 더 나쁜 국가기관의 사유화입니다. 요즘 사정기관들의 모습을 보면, 한동안 우리 뇌리에서 잊혀졌던 ‘권력의 주구’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그러나 권세를 쥐고 있는 분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권력기관이 칼날을 멋대로 휘두를수록 민심은 더 멀어지게 돼 있습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닙니다. 정남기 경제부문 선임기자jnamki@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