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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8.31 20:05 수정 : 2008.08.31 23:11

김규원 지역부문 지역팀장

편집국에서

서울시가 지난 26일 서울시청 본관 건물 뒤편에 있는 태평홀을 기습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문화재위원회가 이 건물을 사적으로 가지정해 철거 공사를 막았습니다. 아직도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서울시청 본관 건물의 보존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면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에게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먼저 오 시장은 스스로 한 약속을 저버렸습니다. 오 시장은 지난 6월1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청 본관 건물의) 원형 보존을 강조하는 문화재위원회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문화재위원들이 어떤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하면 서울시가 따를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또 서울시는 지난 2월 발표한 서울시 새 청사의 최종 설계안에서 기존 시청사의 원형을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의 최종 설계안은 기존 시청사의 태평홀을 철거하고, 시청 현관을 3층까지 뚫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태평홀 기습 철거는 이런 설계안대로 새 시청사를 짓기 위한 절차로 보입니다.

애초 서울시는 이번 설계안에 앞서 나온 설계안에서 문화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기존 시청사를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오 시장이 2007년 10월 “문화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서울시의 의지가 많이 퇴색했다. 서울시 신청사의 디자인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존 청사를 보존하는 설계안은 폐기됐습니다. 오 시장이 앞선 설계안을 채택했더라면 이번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 시장은 2007년 10월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청은 한번 지어놓으면 50년, 100년 뒤에도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돼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새로 짓는 시청사가 50년, 100년 뒤에도 계속 유지되길 바라는 오 시장이 왜 82년 된 기존 시청사의 가치에는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100층이 넘는 새 건물을 언제든지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82년 된 건물을 하루아침에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을 좀더 깊이 생각할 수는 없었을까요?

역사적인 건축물의 리모델링에 대한 오 시장의 의견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오 시장은 8월28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독일 의회의 사례를 들어, 외국에서는 건물의 외벽만 남긴 채 내부를 리모델링해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같은 유럽의 나라들에는 이렇게 외벽만 남기고 리모델링하는 역사적 건축물보다 원형을 보존하는 역사적 건축물이 훨씬 더 많습니다. 더욱이 지난 100년 동안 역사적 건축물을 거의 다 없애버린 서울을, 도시 전체가 역사적 건축물로 가득한 유럽 도시와 견주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급속한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역사적 건축물을 잃거나 스스로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없어진 것은 단지 건축물이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와 경험, 기억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오 시장이 헐어버리려는 기존 시청사의 시장실에도 32명에 이르는 전직 서울시장들의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강남의 아파트처럼 20~30년마다 새로 부수고 짓는 그런 공간에서 사는 게 과연 행복한 일일까요? 오 시장의 깊고 먼 안목을 기대해봅니다.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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