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07 19:28
수정 : 2008.12.0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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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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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공공부문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고용 불안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공포의 발원지는 청와대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각 부처에 산하 공공기관 구조조정 실적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뒤부터 공공부문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등 주요 공기업들은 주말에도 주요 간부들이 출근해 인력 감축을 뼈대로 한 ‘경영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합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낭비는 궁극적으로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개혁 대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이렇게 서둘러야 할 만큼 심각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부문이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는 긍정적 외부효과가 큽니다. 공기업의 경제활동은 해당 기업한테는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덩달아 이익을 보는 데가 많다는 얘깁니다. 시장 기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산되지 않는 사회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 공기업의 경영 실적만으로 ‘고비용, 저효율’을 말하는 것은 썩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고용시장에서도 공공부문의 외부효과는 큽니다. 요즘처럼 경기 침체로 민간 고용이 위축될 때는 공공부문에서라도 고용 흡수력을 최대한 높여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공부문은 국민소득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과소고용 상태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통계를 보면, 2006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공무원 수는 2.8명으로 미국(7명) 프랑스(7.9명) 독일(5.5명) 등 선진국에 견줘 적습니다. 공공행정을 포함해 교육·의료·복지 등 전체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 비중은 12.4%(2004년 기준)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1.7%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입니다. 30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를 빼면 우리나라가 꼴찌입니다. 노동연구원 추정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사회서비스 부문의 고용 비중을 17% 정도로만 높이더라도 100만개의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고용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급격한 경기 침체로 민간기업들의 감원이 본격화하고 있어, 정부가 고용 한파를 녹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일자리가 줄면 국민들의 소득이 줄어 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활동을 위축시켜 고용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점을 꼽으라면, ‘말 따로 행동 따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정부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할 고용정책에는 소극적입니다. 더 한심한 것은 무조건적인 인력 감축을 경영 효율화의 잣대로 삼으며 공치사하는 듯한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입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공공부문 효율화는 경제가 어렵더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라며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청년실업 대책으로 추진되는 공공부문 인턴사원 채용계획과 관련해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인턴으로 채용되면 100만원 정도 월급을 주는데 밥값하고 출퇴근 차비, 또 취업 준비를 위한 학원비 정도로는 충분하고 그래서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한달 월급 100만원에 길어야 10개월짜리 일자리를 ‘희망의 보금자리’로 내세우면서, 한편으로는 수천, 수만명의 공공부문 종사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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