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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21 21:33 수정 : 2008.12.21 21:33

정의길 국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박정희 시대의 구호 중 하나는 ‘싸우면서 건설하고, 건설하며 싸우자’였다. 요즘 정부가 하는 모양새를 보면 이 구호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느낌이다. ‘싸우면서 삽질하고, 삽질하며 싸우자’라는 말이 적당할 정도다.

한나라당은 국회를 이른바 ‘엠비(MB) 입법’의 통과를 위한 전쟁터로 만들었다. 소화기의 분말은 포연으로, 소화전의 물줄기는 총탄으로 국회의사당을 덮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을 발표하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15일 청와대 모임에서 “전광석화처럼 착수해 질풍노도처럼 밀어붙이라”며 “동시다발로 착수해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하고,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망치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대강 정비사업이 한반도 대운하로 탈바꿈할지 않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비록 대운하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토목경제’라는 본질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사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건설경기 부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는 닷컴 버블이 꺼지자, 모든 부동산 규제를 해제했다. 그 결과는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투기 광풍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도 우왕좌왕했다. 혁신도시다 기업도시다 하면서 지방에서 거대한 토목·건설 거품을 양산했다.

한승수 총리는 얼마 전 국회 답변에서 “지난 10년 동안 성장잠재력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그가 무엇을 지칭하며 성장잠재력을 거론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두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에 매달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얘기는 옳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이런 얘기를 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아이티 산업이라도 육성하려 했으나, 지금 이명박 정부는 토목경제 외에는 아무 대책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크고 작게 8차례나 부동산 규제를 해제하고 부양책을 발표했다. 최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금은 부동산 투기를 걱정해야 할 때가 아니라 자산 디플레(가격 하락)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로 자산 디플레가 걱정된다면 삽질을 멈춰야 한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 폭발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으려고 1992~95년 9차례에 걸쳐 토목·건설 분야를 중심으로 무려 73조엔이나 쏟아부었다. 시골 구석에 공항을 짓고, 고가도로까지 연결하며, 불요불급한 토목공사로 온 국토를 파헤쳤다. 그러나 집값은 더 떨어졌고, 실질 경제성장률도 0%대에 그쳤다. 거품 붕괴도 막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재정 및 통화정책 수단들을 헛되이 소진해 그 이후도 기진맥진했다.

대공황 시절 미국의 뉴딜정책에서 토목·건설 비중은 10%도 안 된다. 뉴딜은 토목·건설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보장·복지 프로그램이었다.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가 구상하는 최대 1조달러의 경기부양책도 토목·건설 분야는 노후화된 고속도로의 보수 등에 그친다. 녹색산업 성장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그린 뉴딜’의 구체안을 만들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

4대강 정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파내기가 일자리를 몇개나 만들 것이며, 또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 위에 고속도로를 만들 것인가? 이명박 정부 이후가 정말로 걱정되는 이유다.


정의길 국제부문 편집장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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