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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애 사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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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한겨레>는 지난해 12월15일부터 1월11일까지 ‘인터넷 한겨레’를 통해 새해 캠페인 ‘2009 희망을 응원합니다’ 행사를 벌였다. ‘2009년은 □□□□의 해’ 네모 안에 새해 개인적인 바람을 채워넣고, ‘내가 만드는 한겨레신문’에는 새해 가장 듣고 싶고 톱뉴스의 제목을 뽑아주도록 했다. 차곡차곡 쌓인 수천 가지 희망 중에는 예상과 달리 건강·합격·취직·결혼·살빼기·내집 장만 같은 개인적인 바람보다는 나라 걱정과 비판 여론이 훨씬 더 많았다. 뉴스 제목으로는 ‘재선거’ ‘퇴출’ ‘탄핵’ ‘몰락’ ‘타도’ ‘하야’ 같은 노골적인 정권투쟁 구호들이 도배하다시피했다. 물론 캠페인에 참여할 정도로 열성적인 독자들의 반응만으로 일반화하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민주화 20년을 부정하며 초고속 역주행을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성난 민심을 확인하고, 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기원하기엔 너무도 각박해진 세태를 짐작하기엔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 미국발 경제 한파에 기본 생존권까지 저당잡힌 청년세대의 아우성이 절박하다. ‘국민백수 탈출’ ‘나도 돈 버는 해’ ‘나 취업했어요’ ‘청년실업률 0%’ …. 얼마 전 대학 신문의 까마득한 후배 기자로부터 인터뷰를 당하며 새삼 386세대의 ‘우리 삭막했던 젊은날’과 그 시절 그 노래가 떠올랐다. 전두환 정권의 살기가 등등하던 1980년대 초반, 대학 언론에 대한 탄압도 일반 언론에 못지 않게 극심했다. 사전 검열에 막혀 기사가 잘리거나 이미 찍어 놓은 신문이 ‘배포 금지’로 몽땅 사라지는 사태가 비일비재했다. 그런 날이면 한탄하듯 부르던 노래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임을 위한 행진곡>)였다. 미팅·축제·쌍쌍파티 같은 ‘핑크빛 문화’들은 구세대의 개인주의적 감상이란 지탄 속에, 짱돌과 최루탄과 화염병의 ‘잿빛 매연’으로 지워져야 했다. 굳이 ‘운동권’이 아니었어도, 연애니 학점이니 취직이니 하는 개인적 욕구들은 드러내서는 안 될 금기였다. 그렇듯 젊은날에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꿈꿔야 할 미래를 빼앗겼던 ‘386 부모들’은 한풀이라도 하듯, 기러기 아빠를 감내하며 자녀들의 영어교육과 유학 뒷바라지를 해 왔다. 하지만 어학연수·유학·고학점·자격증·석박사 학위에 글로벌 봉사활동 경험까지 갖춰도 일자리 보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죽하면 물리학 박사 출신이 환경미화원 지원을 했을까. 그나마 비정규직마저도 줄줄이 자르고 있으니 ‘88만원 세대’도 옛말이 될 판이다. 갑작스런 실직 탓에 결혼이 깨졌다는 한 누리꾼의 사연이 인터넷을 달구고, 청년층 열에 여섯 이상이 취직할 때까지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우리 삭막했던 젊은날’의 안타까운 대물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연말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한겨레 평화의나무 합창단은 ‘군에 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들을 위한 노래-너를 보내고’ 공연을 했다. 내내 흐느낌으로 이어진 노래극의 절정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죽어간 젊음들의 넋을 달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마침 가사의 원작자인 백기완 선생도 객석에서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민주화 박물관의 유물’쯤으로 여겨졌던 이 노래가 이렇게 생생하게 되살아 올 줄 몰랐다.” 그날 관객들의 입모음처럼, 올해 또다시 거리에서 그 비장한 외침이 끊이지 않을 듯한 ‘예감’이 든다.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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