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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현 편집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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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기에 빠진 도마뱀은 꼬리를 자른다. 그리고 재생된다. 그러나 다시 난 꼬리는 재차 재생될 수는 없다고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 쓰는 마지막 수단인 셈이다.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연쇄살인범이 잡힌 그 순간, 용산 철거민 참사가 뉴스 순번에서 뒤로 밀릴 것이라고. 보수신문이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고 경찰이 심리분석관까지 내세워 과학수사의 무용담을 확대재생산할 때 예상은 현실이 됐다. ‘이명박 정권과 보수세력의 짝짜꿍 반격이 시작됐구나.’ 친구가 곤경에 빠졌을 때 도와주는 건 인지상정이자 미풍양속. 연쇄살인범 보도의 비중이 늘면서 용산 참사 때문에 가슴 졸이던 이 정권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했다. ‘촛불집회를 확산시키려는 반정부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연쇄살인범 검거를 적극 홍보하라’는 메일을 청와대 행정관이 경찰 홍보책임자에게 보냈다는 사실. 나치 선전상 괴벨스에서 80년대 보도지침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여론 통제-조작의 잔혹사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심경은 참담하다. 메일에는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등 경찰 발 기삿거리들이 친절하게 예시돼 있다. 그들의 예상대로, 친절한 예시는 실제 기사로 나타났다. 민언련이 1월30일부터 2월4일까지 방송3사의 관련 보도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보면, 과학수사 기법(CCTV, DNA)이 6건, 프로파일러 6건 등이 보도됐다. 한 보수신문은 1면에 담당 형사의 입을 빌려 ‘살인범 강아무개가 밥을 깨끗이 비우고 코를 골며 잤다’는 기사를 실어 쏠쏠한 재미를 봤다. 다른 신문들도 너나없이 형사의 입을 쳐다봤다. 그의 말을 바지런히 퍼다 날랐다. 정보를 독점한 경찰의 출고 조절에 따라 보수언론을 포함해 전체 언론 상품의 생산과 유통이 이렇게 요동쳤다. 이미 예상한 일은 또 있다. 이번에도 정권은 꼬리 자르기를 할 것이라고. 청와대는 ‘행정관 개인 판단일 뿐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고 고개를 젓는다. 일개 행정관이 일면식도 없는 경찰 홍보담당관에게, 그것도 윗선에 보고도 없이 ‘정권의 안위와 직결된’ 이메일을 보냈다는 주장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경찰청 외 다른 곳에서는 받지 않았다는 경찰의 설명을 과연 몇 사람이나 수긍할까. 이쯤 되면 ‘양치기 소년’의 비유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쉽게 예상하지 못할 일이 남았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등 꼬리를 문 의혹을 새로운 의혹으로 덮었다. 그리고 당선됐다. 이번에도 꼬리 자르기로 의혹이 덮일까. 단언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똑같은 꼬리 자르기라도 대선 후보가 하느냐, 대통령이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훼손된 공권력의 정당성을 회복하고 국정을 주도하기 위해서 대통령은 한 점 의혹도 남겨서는 안 된다. 기껏 청와대 부대변인을 내세워 “드릴 말이 없다”며 어물쩍 넘기려 해선 안 될 일이다. 이제 국민들도 달라졌다. 대선 때는 의혹이 의혹을 덮어도 경제만 살릴 수 있다면 눈감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론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 정권에서 경제는 지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정권은 ‘꼬리’를 보라는데 국민들은 지금 ‘도마뱀’을 보고 있다. 잘라낸 꼬리는 무한재생되는 게 아니다. ‘꼬리 자르기 쇼’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다. 도마뱀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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