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2.22 18:53 수정 : 2009.02.22 20:57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요즘 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동유럽이 위기의 뇌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지역 국가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무더기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비롯한 미국발 금융위기나 이번의 동유럽발 금융위기는, 빚으로 ‘탐욕의 불장난’을 하다 참상을 불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동유럽과 거의 연관이 없는 국내 금융시장도 크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환율은 치솟고 주가가 급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위기 때와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금융시장에선 ‘3월 위기설’과 같은 흉흉한 얘기가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외부충격에 너무 과민반응을 하지 말라며 시장 달래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동유럽은 국내 금융불안의 근본요인은 아닙니다. 우리 경제에 내재해 있는 불안 요소가 동유럽 국가들의 부도위기라는 외부충격을 계기로 드러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런 불안 요소를 미리 제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바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부도 마침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공적자금을 동원한다는 것은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강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도 전문가들 대부분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연말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에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수술을 받겠다는 환자가 없는데 의사가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수술대에 올려놓을 수 없는 것 아니냐.” ‘수술’은 구조조정, ‘환자’는 구조조정 대상을 비유한 것입니다. 환란 이후처럼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금융기관 보유자산이 부실 덩어리로 전락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만, 뒤집어 보면 아닙니다.

지난해 9월부터 경제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정부는 말로는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론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정책을 펴 왔습니다. 건설분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에서 비롯된 건설업과 가계 부실, 이에 따른 금융권의 잠재적 대출 부실을 제거하기보다 연장하는 정책들을 쏟아냈습니다. 부동산 투기에 따른 불로소득 환수장치는 이미 대부분 해체됐습니다. 그나마 금융 건전성을 지켜줬던 주택 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규제도 서울 강남 3구만 빼고 모두 풀었습니다. 마치 수술 환자에게 계속 모르핀 주사를 놓아주면서 ‘왜 수술대에 빨리 오르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꼴입니다.

범위를 넓혀, 정부의 전체 경제운용 방향을 봐도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나타납니다. 걸핏하면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기 부양에 총력전을 쏟겠다”고 합니다. 구조조정은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물가나 금리 상승이든, 대량실업과 임금삭감이든 어떤 형태로든 고통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공황이 전쟁보다 더 무서운 이유는 피신이나 피난이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정부는 구조조정 방침을 선언하기 이전에,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을 솔직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지혜를 모으는 일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sbpar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편집국에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