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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19 20:23 수정 : 2009.04.19 20:23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편집국에서

“우린 닌텐도 게임기 같은 거 왜 못 만드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초 지식경제부를 갑자기 방문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하면서 던진 질문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왜 못 만들지?’ 하고 곰곰 따져봤습니다. 대통령 주문인지라 정부 관련 부처들도 부랴부랴 그 이유를 찾아 나섰고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닌텐도 같은 창의적인 상품이 나올 수 없는 토양을 요즘 확인합니다.

동영상 포털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이 한국 법률에 따라 시행해야 하는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거부하는 바람에 정부가 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동영상이나 댓글을 올리는 한국 사람은 모두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규제를 내놨는데, 구글이 희한하게 이 규제에서 쏙 빠져나갔습니다. 유튜브 이용 때 국가 설정을 ‘한국’으로 할 경우 동영상과 댓글 올리기 기능을 차단해버린 것입니다. 대신 ‘전세계’ 또는 다른 나라 국적으로 설정을 해서 들어가면 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용자들은 외국에 서버가 있는 사이트로 접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적용하는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게 구글 쪽 설명입니다.

이에 따라 잠시 국적만 버리면 한국 누리꾼들에게 유튜브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청와대도 이 정도 자존심 구기는 일은 감수하겠답니다. 청와대는 유튜브에 ‘전세계’로 국가 등록을 해 대통령연설 등 동영상 홍보물을 계속 올리기로 했습니다. 구글이 친절하게 안내한 구멍을 활용하는 셈이지요. 어쨌든 바뀐 것은 국가 설정 방식 하나뿐인데 유튜브는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받지 않는 현실, 여기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이치를 터득하면 무궁무진한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글로벌 호구’로 전락합니다.

인터넷이 상징하는 디지털경제는 기존 경제체제(구경제)와는 다른 작동원리를 갖습니다. 가령 수확체감이 아닌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공급보다는 수요, 독식보다는 공유, 독자적인 내재가치보다는 네트워크를 통한 외부효과, 일사불란한 수직적 위계질서보다는 수평적 호환을 더 중시하는 게 디지털경제의 선도자들입니다. 수확체증은 네트워크 크기의 함수입니다.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늘어날수록 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사업자나 이용자들의 이득도 계속 커집니다.

구글은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며 그 이유로 ‘익명성에 기반한 표현의 자유 보장’을 내세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디지털경제에 걸맞은 ‘첨단 상업주의’를 보여줍니다. 구글이 우리 정부에 맞서는 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원칙과 신념보다 상업적 이해가 더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릅니다. 국내 토종 포털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사업자들은 구글과의 경쟁에서 텃밭 고객들까지 내주게 됐습니다. 벌써 ‘사이버 망명’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아 정부는 디지털경제와 역주행하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한겨레> 보도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첫 반응은 이렇습니다.

“유튜브 한국사이트에서 이행을 거부한 인터넷 실명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시행된 제도로, (한겨레 보도는) 마치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실명제를 둘러싼 우리 정부와 구글간 다툼을 보면, 한국판 닌텐도의 꿈이 다가오기는커녕 오히려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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