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5.03 20:36
수정 : 2009.05.03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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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지역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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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난달 16일 저녁 광화문 부근의 한 식당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났습니다. 최근 김 지사는 가는 곳마다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한다,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김 지사는 “정부 청사를 분산할 것이 아니라, 행정도시에 서울대학교와 같은 명문대를 옮겨서 교육수도를 만드는 게 낫다”고 말했습니다. 또 혁신도시 건설에 대해서도 “공공기관을 내려보낼 것이 아니라, 울산이나 광양처럼 기업이 내려가야 그 지역이 발전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김 지사의 말대로 서울의 명문대들이 행정도시에 내려가면 좋을 것이고, 혁신도시에 삼성과 현대, 에스케이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내려가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대안들의 실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는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을 지방으로 옮길 권한이 없습니다. 서울의 명문대를 지방으로 옮기는 정책은 전두환 철권통치 시절에도 실패했던 일입니다. 김 지사는 실현되기 어려운 대안을 가지고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행정도시·혁신도시 건설 정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후보 시절에 “선거에서 재미 좀 보려고” 내놓은 정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50년 동안 100여건이나 쏟아진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방발전 촉진 정책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200여개의 정부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행정도시·혁신도시 정책이 실행된다면 2030년까지 수도권 인구 가운데 170만명이 충청·영남·호남권에 이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면 해당 지역의 발전은 물론이고 수도권의 집값 안정이나 교통혼잡 완화, 대기오염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울 중심의 일극사회를 바꾸는 큰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김 지사처럼 지역균형 발전 정책을 공공연히 반대하거나 오히려 수도권 발전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이런 의심이 듭니다. 애초 계획대로 수도권에서 170만명이 지방으로 옮겨가면 수도권 집값이 떨어지거나 안정될 것입니다. 혹시 이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2004년 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결정될 때도 수도권 집값이 반토막날 것이라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과장된 주장과 이에 따른 민심의 동요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지난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적지 않은 국민들이 ‘747’이나 ‘뉴타운’ 공약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며 투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횡재’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견디기 힘든 한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각자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벌려고 하기보다는, 세금을 충분히 내고 정부에 교육·주택·의료·노후·고용에 대한 복지정책을 요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정부가 국민에게 횡재를 가져다줄 수는 없지만,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녁 김 지사에게 물었습니다. “김 지사가 고향인 경북도의 지사였더라도 지역균형 발전에 반대하겠습니까?” 김 지사는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반대할 수도 있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김 지사가 경북도지사라면 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반대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대통령을 꿈꾸는 김 지사가 경기도민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민하고 발언하기를 기대합니다.
김규원 지역팀장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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