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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0 21:29 수정 : 2009.06.10 21:29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내가 살던 고향엔 제법 어엿한 강이 있었다. 여름이면 마을 친구들과 헤엄치고 놀았던 좋은 목간이었고, 횃불낚시로 붕어·송사리·피라미 같은 물고기들을 마냥 주워 담을 수 있는 황금어장이었다. 1급수에만 자란다는 버들치도 더러 볼 수 있을 정도로 물은 맑았다. 그런 고향의 강을 지금은 볼 수 없다. 물길은 개울 수준으로 좁아진 채 흉물스런 덩어리들을 둥둥 흘려보내고 있다. 갈수기엔 대부분 강바닥이 솟구쳐 드러나, 가끔 소싸움 터로 용도가 바뀌었다. 고향 어른들 얘기로는, 홍수를 예방하고 농업용수를 확보한다며 제방 쌓고 콘크리트 보 세운 뒤로 시나브로 강이 죽더라고 했다. 강물이 썩게 된 결정적 계기는 강 파기였다. 마구잡이 골재 채취로 상·하류 강바닥 높이가 달라지는 곳이 생기고 이 때문에 듬성듬성 물이 고여 썩어간 것이다.

향수의 보금자리를 잃은 경험으로, 지난 8일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보자. 심명필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은 “이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기술자, 공무원 등은 무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민 누구나, 지극히 상식적 판단 근거로 던질 수 있는 물음에 답하는 책임부터 중시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질문. 이 사업으로 어떻게 4대강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인가? 마스터플랜의 핵심은 4대강 바닥을 4~6m 깊이로 파내고 16곳에 보(댐)를 세워 ‘물그릇’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뭄과 홍수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게 정부 주장인데, 물 흐름 차단에 따른 수질 악화를 막을 설득력 있는 방안은 없다. 정부가 내놓은 ‘질의 응답 자료’를 보면, ‘보를 막는다고 해서 반드시 수질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며, … 유량 변화 등에 따라 수질이 개선될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많은 전문가들, 그동안 여러 국책연구기관에서도 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막는 시설을 없애는 게 강 살리기의 기본이라고 강조해 왔는데, 정부 계획은 거꾸로다.

둘째, 경제성이 있는 사업인가? 이번 사업은 앞으로 3년여 동안 직접 사업비만 22조2000억원, 간접 연계사업까지 더하면 30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단군 이래 최대 토건사업이다. 이 엄청난 비용을 들일 만큼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 정부는 지금까지 입증하지 못했다. 비용 이상의 편익이 나와야 하는데, ‘연간 7조원에 이르는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등 도무지 앞뒤 연결이 되지 않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연간 7조원의 피해액은 산사태 등 4대강 이외 전체 국토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까지 망라한 것인데다 그 수치 자체도 뜬금없다.

마지막 질문은 호소다. 제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도 갖춰야 할 게 아닌가. 정부는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가 들어갈 사업의 종합계획을 6개월 만에 확정했다. 그동안 이 사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책연구기관의 전문가는 징계하고, 반대하는 쪽의 참여는 원천봉쇄한 가운데 ‘묻지마 설명회’ 몇 번 열고, 토론 참석자조차 사전자료 없이 참가하는 공청회 딱 한 번 열었다. 그리고 앞으로 석 달여 동안 환경영향평가 등을 마치고 10월에는 마침내 첫삽을 뜬다고 한다. 이게 말이나 되나?

김용택 시인이 전하는 강물의 목소리로 마무리해야겠다.

…(중략)…

두고 보라고,


두고 보면 알 것 아니냐고

알 만한 주먹들은 진즉 알 것 다 알고 있다고

학도 봉도 아닌 것들이

비싼 밥 싸게 먹고 앉아

배부른 소리들 작작하며

까불지들 말라고,

-‘섬진강 6’ 중에서 - sbpark@hani.co.kr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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