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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8 23:00 수정 : 2010.04.28 23:00

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





김두식 경북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불멸의 신성가족>을 다시 펼쳤다. 경남지역 건설업자 정아무개씨가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검사 향응 리스트’의 실상을 달리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잠시 검사 생활을 한 적이 있는 김 교수는 2008년부터 법조계 안팎 인사 23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판사·검사·변호사가 사는 세계의 속살을 드러낸다.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역시 ‘접대’의 양태와, 이에 대한 판검사들의 태도다. 판검사들은 액수가 과도하거나, ‘정체’가 애매한 이가 건넸거나, 자신의 업무와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현금은 대체로 거절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몇몇 경우엔 내심 찜찜해하면서도 결국은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사례를 나름대로 유형화해 봤다.

1. 판검사 식비와 직원 회식비 명목으로 몇십만원을 받아 먹고 마시는 데 썼다.

2. 밥을 먹는 자리에서 인연이 있는 변호사가 여러 검사에게 수십만원어치 상품권을 나눠줬다.

3. 사업을 하는 고교·대학 동창이나 변호사가 캐디피와 밥값을 낸 골프를 쳤다.

4. 친구가 준 법인카드로 룸살롱에 가 술을 마시고 결제를 했다.


김 교수도 지적하듯 이런 사례엔 공통점이 있다. 접대의 ‘객체’인 판검사들의 경우 ‘나만 거부했다가 모난 돌이라고 정 맞지나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 ‘남들과 함께하는데 설마 탈이 나겠어’ 하는 공범의식, ‘이건 로비가 아니라 선의의 대접일 뿐이야’ 하는 자위의식 등이 내면에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주로 변호사들인 접대의 ‘주체’ 역시 ‘잘 아는 처지에 이 정도가 무슨 잘못이야’ 하는 무죄의식을 지니고 있을 터다. 그런 만큼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일종의 ‘보호막’이 쳐진 세계다. 그런 점에서, 친분이 없는 ‘업자’ 정씨한테서 룸살롱 접대, 심지어는 성접대를 받은 의혹에 휩싸인 ‘리스트 검사들’은 훨씬 간이 큰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접대의 ‘무언의 법칙’이 법조계에만 있을까. 정치계에도, 경제계에도 인간관계나 정리로 표현되는 접대문화가 존재한다. 기자가 몸담고 있는 언론계도 예외가 아니다. 밥 한끼, 술 한잔, 함께 부르는 노래 한곡이 쌓여 친밀감을 느끼게 된 사람들은 많다. 이런 이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다루며 먼저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살살 좀 다뤄줘”라는 그들의 부탁성 전화를 받고 생각에 빠진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스스로도 흠칫 놀란다.

그렇다. 결국 요점은 하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 스폰서 정씨는 향응 제공이 그저 인지상정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은 어린아이도 안다. 정씨 스스로도 <문화방송> ‘피디(PD)수첩’에서 한편으론 “‘무슨 어려운 일이 있다’ 이러면 (검찰이) 진짜 100% 봐준다. 지금 생각해도 (청탁 내용은) 무리한 것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검사 향응 리스트’ 조사가 막 시작됐다. 이번 조사는 고질적인 법조계의 스폰서 문화를 제대로 파헤쳐야 한다. 혹시나 팔이 안으로 굽어 봐주기·덮어두기 조사에 그친다면 검찰은 정말 설 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

거기에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법조계 바깥 세계에도 자기성찰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하면 스폰서 문화라는 ‘독버섯’은 법조계 안에서조차 금세 다시 자라날 가능성이 크다. 그 독버섯은 법조계의 울타리 너머 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계 어디에든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디에도 정말로 공짜는 없다.

정재권 사회부문 편집장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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