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현 스포츠부문 편집장
|
그러나 웬걸, 점입가경입니다. 학생 대다수가 방학중에도 ‘놀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형편’이 되는 부모들은 심지어 유아 때부터 ‘영재교육’으로 시작해 ‘영어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때 중학교 과정, 중학교 때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학습’ 시킵니다. 이번 방학에 고3 아들 과외비로 한 달에 2000만원을 쓴다는 집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공부의 내용은 뭔가요? 대부분은 흥미를 느낄 수 없는데다,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무용지물인 것들입니다. 이 무슨 국가적 낭비인가요? 그 돈과 시간을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공부나 독서, 운동, 음악이나 미술 등 취미활동, 또는 봉사활동 등에 쓸 수 있다면….
한 친구 딸(17)은 고1 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외고 입시에 실패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1년 교환학생으로 가더니 재미를 붙여 눌러앉았습니다. 영화 관련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고 놀기도 잘하는데 성적도 상위권입니다. 지난달 고교를 졸업하고 잠시 귀국한 그는 “한국에선 수학에 별로 흥미를 못 느꼈는데 캐나다에선 재미를 붙여 지난 학기 수강한 9과목 중 5과목이 수학 관련이고, 수학 성적이 떨어지는 애들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거기선 수학을 원리 중심으로 가르치고 푸는 과정을 중시해, 우리처럼 한 시간에 몇십 문제의 답을 내놓아야 하는 식이 아니라 한 문제를 풀 때까지 2~3시간을 주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에 칵테일 자격증까지 땄다며 방학중에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할 거라더군요. 즐겁게 공부하면서 알차게 노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우리의 경제적 여유는 커졌는데 소모적 경쟁은 극심해지는 건 왜일까요? 학력별·계층별 소득차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에선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날로 심해지는 사회 양극화가 그 주범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득불균형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1995년 0.262에서 지난해엔 0.319로 크게 악화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계층이 분화됐고, 하위계층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공고한 학벌사회에서 내 자식을 조금이라도 더 상위계층에 위치시키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부으며 경쟁을 선도하는 상위계층부터, ‘내 자식만 안 시킬 수 없어’ 파출부를 해서라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중하위계층까지, 날로 고조되는 ‘상한선 없는 무한경쟁’의 악순환이 온 나라를 미쳐 돌아가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교육 문제를 포함한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소득불균형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입니다. 또 그러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일 것 같습니다.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하게 하려 최대한 투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교육 대책의 하나로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한다고 하니 학원 업종이 하나 더 생겨나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최근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정부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제도화가 이뤄질진 모르겠지만)만으로도 참 반가운 일입니다. 이를 비롯해 여러 유형의 이익이 강자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에게 큰 차이 없이 돌아가는 구조가 정착돼야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더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인현 스포츠부문 편집장inhyeon@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