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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23 20:25 수정 : 2011.02.24 09:13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박순빈 경제부문 편집장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부산저축은행과 대전저축은행에 대한 6개월 영업정지 조처를 발표하면서 “상반기 중에는 추가적인 영업정지 없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저축은행 4곳이 추가로 영업정지 조처를 받으면서 김 위원장이 저축은행 예금자들에게 거짓말쟁이로 찍혔다. 정부 말을 믿고 안심하다가 날벼락을 맞은 꼴이니 불만이 들끓는 게 당연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취임한 지 두달도 채 안 된 김 위원장을 두고 문책론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김 위원장 발언의 진위는 맥락으로 가려야 한다. 멀쩡한 은행도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빼내는 ‘뱅크런’ 상황이 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은행 건전성의 잣대로 통하는 자기자본비율 8%라는 것도, 단순하게 계산하면 은행이 자기 돈보다 11배나 많은 남의 돈으로 굴러간다는 얘기다. 그 돈의 주인인 예금자들이 일시에 “내 돈 줘” 해버리면, 은행은 하루아침에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다. 뱅크런은 그래서 무섭다.

다시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돌아가보자. 추가 영업정지 없다는 공언에는 “대규모 예금인출만 없다면…”을 전제로 한다. 결국 하나 마나 한 얘기인 셈이다. 어쨌든 김 위원장의 공언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예금자들의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은 신뢰의 회복이다. 문제는 저축은행은 물론, 금융당국도 지금까지 신뢰할 만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저축은행 부실은 부동산 거품이 한창 무르익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가 저축은행의 영업 기반을 넓혀주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그해 5월 대출 규제를 확 풀어버렸다. 이에 저축은행들이 몰려든 곳이 바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화근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부터 부동산 거품 행진이 멈추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주택사업을 위주로 하는 건설사들이 줄줄이 경영난에 빠지고, 이들의 사업에 ‘묻지마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도 덩달아 곤란한 처지로 몰렸다. 당시 저축은행의 피에프 대출 부실 문제는 금융대란의 뇌관으로 꼽혔다.

이런 잠재적 위험에 대해선 무엇보다 사전 제거 노력이 중요하다. 아니면 부실이 더 큰 부실을 키우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6% 성장’ 목표를 붙잡고 있던 정부는 ‘폭탄 돌리기’ 식으로 대응했다. 2008년 하반기부터 건설사 유동성 지원과 부동산 경기 살리기 대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일자리 창출’이니 ‘가계 주거안정’ ‘서민·중산층 지원’이니 하는 명분을 뻔뻔스럽게 내세웠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띄우기에 안간힘을 쓴 덕분인지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큰 탈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중소형 건설사 도산이 잇따르고, 저축은행의 대출 부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서는 월드건설 등 중견 건설사와 재벌 계열 건설사까지 무너지고 있다. 2008년 평균 13%이던 저축은행의 피에프 대출 연체율은 20%대(2010년 9월 말 현재 24.3%)로 치솟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클레인을 동원해도 막기 힘들게 된 셈이다. 요즘 만나는 정부 당국자들한테 이런 지경에 온 원인을 물으면 대답이 한결같다. “부동산 경기 침체의 장기화 때문”이라고. 아직도 경제 관료들은 부동산 경기만 살아나면 건설사와 저축은행 부실 문제나 날로 심각해지는 가계부채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집값은 늘 오른다는 신앙에 갇힌 듯하다.

서구에서는 ‘집만큼 안전하다’는 관용구는, 19세기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항해할 때 겁에 질린 승객들에게 선원들이 “걱정 마시라. 이 배는 집만큼 안전하다”고 말한 데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탐욕스런 후세 사람들이 집의 가치를 바꾸어 버렸다. 집만큼 안전한 투자 대상은 없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불장난을 하다가 경제위기를 주기적으로 일으켰다. 모두 선원의 마음으로 돌아갈 때다.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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