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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엔 동족끼리 죽이던 피의 역사가 묻혀 있다.
영령은 증오와 저주가 되풀이되기를 바랄까.
1980년 5월에는 광주를 까맣게 몰랐다.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고2 겨울방학이 돼서야 광주의 진실이 담긴 유인물 한 장을 몇몇 친구들과 함께 읽게 됐다. 눈앞에서 살육의 현장이 펼쳐지는 듯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유인물을 든 손은 바르르 떨렸다. 난생처음 담배 한 개비를 피워도 봤다. 그런데 한 녀석은 쭈욱 훑어보더니,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 책상으로 돌아가 <수학의 정석>을 펴는 게 아닌가. 물론 그 친구, 서울대 갔다. 대신 우리는 그를 코 푼 휴지처럼 버렸다. 그때 분노를 배웠으며 ‘분노하지 않는 자’에 대한 경멸도 익혔다.
그렇게 새겨진 정조는 당시의 젊은이들을 과격하게 몰아갔다. 케케묵은 얘기 하나를 꺼내자면 1900년대 초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벌어졌던 ‘수정주의 논쟁’을 놓고도 우리는 일찌감치 선악을 구별했다. 계급투쟁 노선을 버리고 사회주의가 민주적이고 점진적인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베른슈타인은 변절자였고, 그를 반박한 카우츠키는 정통이었다. 아니 카우츠키보다는, 노동자 중심의 혁명이론을 밀어붙이다 무참히 살해당한 룩셈부르크야말로 순정의 표상이었다.
그러나 요즘 다시 생각해보면, 진정한 승자는 베른슈타인이다. 카우츠키와 룩셈부르크는 역사책에만 있지만, 베른슈타인의 후예들은 2차대전 이후 유럽을 이끌고 있다. 특히 베른슈타인의 모범생이었던 스웨덴은 지난 100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빼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하고 봉건적이었던 스웨덴이 완벽한 복지체계를 갖춘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뉴스위크> 2004년 조사)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얼마 전부터 스웨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잘 작동하는 복지시스템을 부러워할 뿐, 그런 결실을 맺은 토양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몇몇 학자들의 말을 모아보면, 오늘의 스웨덴을 낳은 것은 결국 타협의 문화란다. 온건함의 승리다. 미국의 한 언론인은 1936년에 “주식회사 스웨덴의 성공은 기꺼이 적응하고 타협하려는 스웨덴 사람의 성향에 있다”고 간파한 적도 있다.
타협과 적응은 분노와 증오의 땅에서는 자랄 수 없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다. 자기 것을 뺏길까봐 눈을 희번덕거리는 두려움과, 그 탐욕과 몰염치에 대한 미움이 충돌하면 점진적인 개혁은 발을 붙일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저주와 경멸의 세상에 살고 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김일성 3부자의 사진을 사격 표적지로 삼은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북한이 남북 비밀접촉을 까발리고 나선 원인이 이 때문이라면 저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거꾸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형상을 그려 넣은 것은 누가 봐도 이명박 대통령을 놀리는 것이다.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검찰도 딱하지만, 꼭 그렇게 인격 모독의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요즘은 쥐 그림 티셔츠까지 팔기 시작했다는데, 그런 조롱으로 심리적 우월감 말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오늘은 현충일이다. 낮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보수·우익 인사들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종북주의 반미사상을 가진 자들을 척결하자”는 게 이 집회의 구호다. 현충원에는 해방의 혼란기와 한국전쟁기에 동족끼리 죽고 죽이던 피의 역사가 묻혀 있다. 무덤 속 영령들은 후손들마저 남과 북, 보수와 진보가 갈려서 끝없이 증오와 저주를 되풀이하기를 바랄까. 순국선열들을 되새기며 이리저리 엉킨 생각들을 엉킨 채로 풀어놓아 본다.
김의겸 사회부장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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