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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18 19:11 수정 : 2011.09.18 19:11

정남기 경제부장

안철수 바람이 거세지며 곳곳에서
낯뜨거운 촌극이 벌어졌다
그 하나가 정체성을 밝히란 요구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교(敎)와 선(禪)을 관통하는 불교철학으로 ‘중도(中道) 사상’을 제시했다. 중간에 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가 선이고 선이 바로 교와 통한다는 뜻이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도 마찬가지다. 양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서로 통한다는 것이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다.

실제로 현실 세계에서 선과 악, 참과 거짓을 선명히 나누기는 쉽지 않다. 스스로를 돌아보자. 우리는 매일 작은 일이라는 핑계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가족들과 다투면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뿐인가. 정의를 외치던 정치인이나 저명한 지식인이 어느 순간 범죄자로 전락하는 광경을 수시로 목격한다. 어쩌면 그런 관념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현실 속에서 중도적 입장에 서기란 쉽지 않다. 편견과 아집에 물든 집단의 논리 때문이다.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바람이 거세지면서 곳곳에서 낯뜨거운 촌극이 벌어졌다. 그중 하나가 정체성을 밝히라는 요구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정체성을 밝히라”고 요구했고, 진보진영의 한 대학교수는 주변 인물들이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친한나라당 성향”이라며 안 원장을 보수라고 규정했다. 본인 생각도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채 이념적 편가르기부터 하고 나섰다.

얼마 뒤 안 원장이 “현 집권세력이 정치적 확장성을 갖는 것에 반대한다”며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포기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에서 안 원장이 본색을 드러냈다며 그를 좌파로 몰아갔다. 그를 ‘보수’라고 했던 대학교수는 ‘합리적 중도’라고 말을 바꿨다.

안 원장에 대한 지지도가 40%를 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로 그는 국정을 운영하기에는 경험과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 그는 “300명 기업이나 3만명 기업이나 경영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 경영은 정치나 행정과 엄연히 다르다. 어떻게 보더라도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안 원장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주목받았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은 4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중요한 것은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그를 통해 표출된 민심이다. 그는 무엇보다 ‘신뢰받는 기업인’의 표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에 서 있다. 안철수 열풍은 신뢰받는 지도자에 목마른 민심이 안철수라는 아이콘을 통해 표출된 것일 뿐이다. 가장 한심한 쪽은 이런 현상을 눈앞에 보고서도 정체성을 거론하면서 이념적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권이다. 정작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기성 정치권이 정체성이란 잣대로 그를 재단하겠다면 일반 국민이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자는 <논어> 안연(顔淵)편에서 “족식족병(足食足兵) 민신지의(民信之矣)”라고 말했다. 식량과 병사가 충분하면 백성의 신뢰를 얻으니, 나라를 이끄는 세가지 요소가 군, 식량, 백성의 신뢰라는 말이다. 공자는 이 가운데 하나를 포기한다면 군이고, 하나를 더 포기한다면 식량이라고 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얘기다. 이른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정치 지도자를 살필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대목은 역시 신뢰일 것이다. 그다음이 국정운영 능력이고, 이념은 맨 마지막이다. 공자가 군사력을 가장 후순위에 뒀던 것처럼 말이다. 신뢰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안철수 원장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국정을 이끌 경험과 능력이지, 그것이 이념적 정체성일 수는 없다.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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