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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8 19:13 수정 : 2011.09.28 21:51

김의겸 사회부장

이승만-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는
그림은, 이씨 왕조를 되살리자는
복벽운동쯤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사상과 노선으로 뭉친 동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나 혼자만 이념의 깃발을 붙잡고 있을 뿐 다들 떠나 한자리 차지하거나 한재산 모으고 있더라.” 여전히 ‘뉴라이트’에 매달리고 있는 한 인사한테 들은 푸념이다. 허름한 중국집이었는데,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고량주 소리가 하도 처량해서, 그만 내 지갑에서 술값이 나오고 말았다.

따져보니, 산이라도 뽑을 듯하던 기세의 뉴라이트였지만 불꽃 튀는 이념논쟁을 펼친 적은 없다. 이명박 정부 초기 ‘건국절’을 추진하다 금세 흐지부지된 게 다 아닌가 싶다. 하긴 과거에도 그랬다. 역사 바로세우기, 제2건국운동, 4대 개혁입법 등 다들 정권 초반 순혈주의가 넘칠 때 힘자랑을 한번씩 해보다 집권 후반 흐물흐물해졌던 게 통례다.

그런 점에서, 권력 누수기에 불거져 나온 요즘의 이념시비는 한겨울 튀어나온 봄 개구리 같다. 잘 지내던 민주주의에 갑자기 자유를 갖다 붙이지 않나, 무덤 속 이승만을 불러내 국부로 치켜세우더니 기어코 어젯밤부터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 뜬금없음에 의심이 버럭 든다. “아! 뭔가 이권이 걸려 있구나.”

우선 자유민주주의가 심상찮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용어지만, 박정희와의 친연성 때문에 개운치 않다. 5·16 직후 일성이 “혁명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한다”였다. 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1972년 유신헌법 때다. 그러니 자유민주주의는 박정희의 딸에게 바치는 헌사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만 추앙도 결국 박정희 시대의 영광을 이야기하기 위해 미리 한자락 까는 게지 싶다. 4·19로 이뤄낸 민주화를 파괴한 독재자가 아니라,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와 시장경제를 지켜낸 애국자임을 공인받으려면, ‘연결고리’로서 이승만의 긍정성이 설명돼야 한다.

이런 정지작업들은 모두 내년 대선에서 이념대결이 본격화하면, 박근혜 의원이 우월한 지위를 누리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다. 따라서 이번 이념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위하기 위한 사상투쟁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을 위한 팡파르이지 싶다. 목조·익조·도조·환조로 이어진 덕업이 태조 이성계에 와서 필연적으로 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묘사한 <용비어천가>와 비슷한 서사구조다. 대단히 세심한 배려다.

하지만 이런 심모원려가 진짜로 박근혜 의원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라는 게 너무 분명해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안철수가 박근혜 대세론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옛날식 대결 구도는 이젠 더 이상 타고 갈 꽃가마가 아니라 짊어져야 할 멍에다. 젊은이들이 목말라하는 건, 이념의 깃발을 펄럭이는 기수가 아니라 현실의 어려움을 도닥거려주고 자신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경청자다. 그러니 이승만-박정희-박근혜로 이어지는 그림은, 요즘 20~30대에게는 아마도 고종이나 순조의 이씨 왕조를 되살리자는 복벽운동쯤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동반추락이다. 막가파 보수가 판을 치니 꽉 막힌 진보의 목청이 더 높아진다. 희망버스에 대고 “세계 조선업계의 동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몰매를 맞은 진보인사들이 있다. 최첨단 자본주의와 봉건적 유제가 혼재해 있는 ‘복잡계’ 한국 사회를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 하나로 돌파해내려는, 진보의 지적 게으름도 보수의 나태와 연결돼 있다. 그러하니 진정 박근혜 의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논쟁의 수준을 높이자. 그게 보수도 살고 진보도 사는 길이다. 번번이 휘청거리는 나라가 바로 서는 길이고, 백성의 숨통을 틔우는 길이다.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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