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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9 19:26 수정 : 2011.10.19 21:41

손준현 에디터부문장

‘빗자루 유령’처럼 아무에게도
관심 못 받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은
한국사회 모든 노동자들의 미래다

박명주는 195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스무살에 서울로 올라와 명동에서 양장기술을 배웠다. 중졸 학력이 전부지만 눈썰미는 매웠고 손은 재빨랐다. 주변의 신뢰를 얻은 박명주는 ‘라코스테’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서광에 스카우트됐다. 비로소 ‘유능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곱상한 얼굴에 숙녀복을 재단해서인지 여자들도 꽤 따랐다.

1970년대 명동은 양장의 메카였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 무대에 서는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고객군이 형성됐다. 지금 한국 패션을 대표하는 진태옥·설윤형·한혜자도 출발점은 명동 한 모퉁이 양장점이었다. 박명주는 의류디자이너로 모두 10년, 스포츠의류매장 경영자로 10년을 살았다.

어느새 오십줄에 들어선 그는 버스노동자로 제2인생을 시작했다. 10개월 남짓 마을버스를 몬 뒤에는 관광버스를 운전했다. 무박 2일 산행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관광버스 기사 일은 기다림과 졸음과 싸우는 것이었다. 자신의 안전도 문제지만 승객들의 안전이 걱정이 돼 그만뒀다. 한참을 놀다가 마침 서울예고에 경비 자리가 났다. 그곳에서 꼬박 2년을 일했다.

2010년 생활정보지를 보고 찾아간 직업소개소에서 홍익대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대학이라 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취직했지만, 처우는 기대 이하였다. 최저임금도 못 되는 수입에다, 마치 종처럼 대하는 관리직에게 인간적 모멸감까지 느꼈다. 12월31일 용역계약 해지라는 이름으로 다른 청소·경비노동자들과 함께 집단해고됐다.

2011년 초 유난히 추웠던 겨울, 박명주는 농성장에서 발가락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과 이를 악물고 싸웠다. 동년배 노동자들뿐 아니라 자식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당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는 노조가 왜 필요한지 몸으로 깨달았다.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 가운데 젊은 시절부터 이렇게 힘든 일을 해온 분들은 많지 않다. 제과점 주인이었던 1955년생 서복덕씨, 10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1959년생 이숙희씨, 미국유학파로 웨딩홀 사장이었던 1954년생 박진국씨 등이 그렇다. 물론 화장품 판매와 보험 영업을 거친 1953년생 여성노동자처럼 고단한 삶을 산 분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1950~1959년생으로 70~80년대 한국의 산업화라는 대동맥에서 고속성장의 실핏줄로 피돌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 시대와 함께 찾아온 조기퇴직과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서 이들은 이제 청소·경비노동자가 돼 만났다.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언론이 시종일관 주목한 것은 저임금과 집단해고였다. 그 밑바탕에는 불쌍한 노동자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들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 청소·경비노동자는 노년층의 일자리가 된 것이다. ‘빗자루 유령’처럼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모습은 지금의 청장년층이 10~20년 뒤 맞이할 미래다. 이들의 삶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그리고 조기퇴직으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모든 노동자들의 미래다.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노동의 역사’가 발간됐다. 노동자들의 개인사를 노동운동의 역사로 확장시켜온 ‘한내’ 출판사에서 펴낸 <우리가 보이나요>(이승원·정경원 지음)가 그 책이다. 이들의 개인사와 비정규직 투쟁사는 좀더 큰 틀의 연대와 투쟁으로 나아가는 실전 지침이다.


이 책은 지난 8월 말에 나왔다. 학교 쪽과 손배소송이 걸려 있는 노동자들은 이 책을 직접 팔아 투쟁기금을 마련해야 했다. 서점 판매는 당연히 9월 말로 늦춰졌다. 공동저자 이승원씨는 언론에 신간 안내 하나 변변히 나가지 못한 게 내내 안타깝다.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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