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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23 19:15 수정 : 2011.11.23 19:15

김의겸 사회부장

안철수·김진숙·김어준을 보며
영웅사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불안도 싹튼다

난세는 난세인가 보다. 어지러운 세상이 영웅을 만든다더니,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그 첫째 자리는 단연 안철수 몫이다. 나이 50도 안 돼 의사, 과학자, 기업가, 교수를 두루 섭렵한다. 자리보다도 ‘버림의 미학’을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안다. 백신을 무료로 나눠주고도 1조원짜리 회사를 키웠다. 5% 후보에게 자신의 50%를 내주더니 단박에 박근혜 대세론을 깼다. 1500억원마저 내놓으니, 이제는 안철수 대세론이 형성된다.

김진숙은 309일을 버텼다. 안개가 피어오르면 주변이 보이지 않아 공포감이 엄습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크레인이 흔들려서 토하면서 견뎌낸 시간이다. 합치면 130만 조합원을 자랑하는 양대 노총이 엄두조차 못 낸 일을 몸뚱이 하나로 해냈다. 인간의 불완전성이나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 그게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김어준도 빼놓을 수 없다. 조중동 합치면 부수가 500만이란다. 그러나 그가 띄우는 <나는 꼼수다>는 600만명이 내려받아 듣는다. 정부가 괴담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벌이는 소탕작전에, 전우 3명만 데리고도 적진을 휘젓는다. <한겨레> <경향> 등의 정규군 진보매체들이 해내지 못한 전공을 쌓고 있는 것이다. 어느 기자는 오랜만에 처남을 술집으로 불러냈더니 “형님, 나꼼수 들으면서 술 마십시다”라고 말해, 절망감과 질투심으로 속이 불편했단다.

“세계사는 다만 위인들의 전기에 불과하다”는 식의 영웅사관을 비웃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이들 때문에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불안도 싹튼다.

우선, 희소성 때문이다. 역사상의 모든 영웅은 개인적 자질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 시대상황과 민중이 찾아낸 것이라고 배워왔다. 대체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성공한 사람도 많고 착한 사람은 더 많다. 그래도 안철수만큼 둘 다를 완벽하게 충족해낸 사람은 찾기 어렵다. 해고자 94명의 복직을 위해 한명의 김진숙이 필요했는데, 수만명의 해고자를 위해서, 아니 850만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김진숙이 필요한지 막막하다. 김어준은, 스스로 “우린 종자가 다르다”고 했듯이 애시당초 복제가 불가능한 인물 유형이다. 그의 ‘잡놈 기질’을 어설프게 흉내내려 하다가는 오히려 같은 편에게 폐만 끼칠 뿐이다.

또 영웅의 유통기한은 대체로 짧다. 안철수라는 불꽃은 짧은 시간에 강렬하게 튀어서, 또 언제 사그라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촛불이 꺼지고 좀체 불이 붙지 않았듯이, 희망버스가 다시 시동을 걸기에는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10여년 전 김어준의 <딴지일보>는 ‘800억원에 팔라’는 제안을 받을 정도로 영광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매체로 돌아갔다.

더 근본적인 건 영웅과 시민을 연결해줄 조직의 문제다. 1987년 20%에 육박했던 노조 조직률이 지난해 처음으로 한자릿수대로 추락했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때는 그래도 한나라당 의원 31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랑 황영철 의원 하나다.


얼마 전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들렀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묘비 글이 눈에 들어왔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도 영웅이었다. 그의 당선은 민주진보진영의 실력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기량에 절대적으로 기댄 결과이다. 청와대를 떠날 때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고,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은 것도 그 구도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가 차가운 땅에 누워서도 외치는 것이다. ‘조직된 힘’을.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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