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넉달 넘게 수사한 것을 검찰이 또 한달 넘게 수사했다. 샅샅이 뒤진 자리를 다시 이 잡듯이 훑다 보니 3주쯤 지나자 더 수사할 것도 없었다고 한다. 다시 일주일가량 법률 검토를 했다. 결론은 공직선거법 위반이었다. 검찰 내부 지침으로는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다. 수사팀은 이를 검찰 지휘부에 전달해 동의를 얻었다고 한다. 이어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도 보고됐다. 5월27일의 일이다.
정치 관여 및 대선 개입 의혹을 받아온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형사처벌 방향은 그런 보고가 있은 지 보름이 다 되도록 아직 미정이다. 늦어지는 이유는 이미 공공연하다. 장관이 검찰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보고를 받느라 그런다는 것이다. 결재를 올릴 때마다 ‘다시 해와’라며 서류를 던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보고’를 받을 수는 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검찰청법 제8조)이고, 검찰보고사무규칙에는 고위공무원 범죄나 선거법 위반 사건 등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장관은 나아가 ‘지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제한이 있다.
검찰청법 제8조에는 법무부 장관이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지만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즉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총장을 통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나눠 규정한 것은 인사 등 일반 행정상 문제 말고 구체적 사건 처리에까지 검사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되면 행정부의 대리인 구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애초 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지, 권력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검찰권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검찰청법 제4조)가 있다. 이를 해치는 지휘권 발동은 재량권 남용이 된다.
이번 사태는 그런 제한의 첫 단계에서부터 덜컥 걸린다. 황 장관은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서면으로든 말로든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고 과정에서 ‘의견 교환’이 있었다는 법무부 쪽 설명은 있다. 이른바 비공식 수사지휘다. 그런 비공식 수사지휘는 그동안에도 있었다지만, 드러나고 확인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뭐라 부르든, 형식으론 총장을 통한 투명한 지휘권 발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내용으론 검찰 독립을 저해하는 결과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위법이다. ‘이럴 바에야 정식으로 지휘권을 발동하라’고 대들지도 못한 채 뜻을 굽히게 된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래된 불신의 구렁텅이로 되돌아가게 됐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알려지기로는, 선거법을 적용해 구속한다는 검찰 의견에 황 장관은 법리적 문제를 들어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와 영장 청구는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심사해 판단할 일이다. 검사동일체의 바깥에 있는 장관이 지휘권 발동 말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판단을 강요할 권한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법리적 이유뿐인지도 묻게 된다. 이번 사건이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으로 판명되면 지난 대통령선거의 정당성에 흠집이 나고, 국정원의 존재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은 진작부터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큰 걱정이었겠다. 황 장관의 비공식 수사지휘가 그런 걱정에서 비롯됐다면, 정치적 이유로 수사를 왜곡하고 검찰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 된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은 이로써 한층 더 분명해졌지만, 망가진 검찰의 회복은 요원하다. 유신시대를 비판한 1970년대 정을병의 소설 <육조지>에는 ‘호되게 남을 때리다’와 ‘일을 망치다’라는 뜻이 함께 담긴 ‘조지다’란 말이 나온다. 그 말뜻 그대로, 황 장관은 검찰을 뭉개 조졌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관련영상] 국기문란 국정원, 개혁될까? (한겨레캐스트#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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