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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08 18:46 수정 : 2014.01.08 18:46

이제훈 국제부장

2008년 봄,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이다. 고향에서 수학 교사 노릇을 했단다. 지금 그는 교사가 아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기존 학력을 인정하지만, 자격증이나 직업 경력은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탈북자들이 ‘경력 단절’로 고통을 겪는 이유다.(통일부 자료를 보면, 탈북자 월평균 소득은 전국 노동자 월평균 소득의 절반도 안 된다. 절반이 넘는 탈북자가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다.) 그도 막노동·대리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최저생계선을 오갔다. 그러던 그가 한 탈북자 단체에서 자리를 얻고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며 쓰게 웃었다. 그는 그 일을 ‘북한민주화운동’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밥벌이 생계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2010년 가을, 그녀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그녀는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 반찬가게를, 다른 그녀는 옷가게를 한단다. 나름 튼실한 생활기반을 다진 셈이다. 그녀들은 “번듯하게 살아보고 싶어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돈을 번다”며 배시시 웃었다. “옛일은 다 잊고 싶어” 다른 탈북자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북녘의 가족에게 송금은 하느냐’는 질문엔 대꾸하지 않았다. 가늠할 길 없는 묘한 빛깔의 감정이 그녀들의 얼굴에 얼핏 스쳤다.(상당수의 탈북자가 북쪽 가족한테 돈을 보내는데, 20% 수준이던 브로커 수수료가 남북관계가 나빠진 이명박 정부 때부터 40~50%로 치솟았다.)

그 무렵 그 청년을 처음 만났다. 그는 한 교회의 도움으로 바리스타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20대 초반인 그는 군대 갈 걱정이 없다. “군대에 갈 생각은 있는데, 안 받아준대요. 우린 판문점 관광도 안 된대요. 위험하다네요.” 한국 정부는 탈북 청년의 군 입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청년은 한국인이지만, 헌법상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다할 권리가 없다. ‘위장 탈북’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는, 외부 접촉을 막고 최장 6개월간 이뤄지는 국가정보원 주도의 정부합동신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2개월이던 조사 기간이 이명박 정부 때 최장 6개월로 늘었다.) 그가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북은 제가 버렸고, 남에서 저는 물 위의 기름이에요. (남도 북도 아닌) 그냥 조선사람으로 살 수밖에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들처럼, 북에서 온 이들의 삶도 제각각이다. 한국인으로 거듭나려 애쓰는 사람, 경계인의 정체성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사람, 북한 출신임을 내세우는 사람….

지난해 말까지 한국에 온 탈북자가 2만6124명(잠정치)이다. 그런데 최근 몇년 새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가 급감하고 있다. 한 해 2929명(2009년)까지 치솟은 수치가 지난해 1516명(잠정치)으로 반토막 났다. ‘탈북자 재입북’이라는 새로운 추세도 나타났다. 2012년 6월 박아무개씨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북한 당국이 공개한 사례만 지금껏 7건, 13명이다. 한국을 떠나 영국 등 제3국으로 ‘위장 망명’하는 탈북자도 많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1000~2000명 수준으로 추정한다.

요컨대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는 급감하고, 한국에서 살다 북한이나 제3국으로 다시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무엇이 그들을 밀어내는 것일까. 한국에 정착한 다양한 이주민 가운데 탈북자와 정서적 거리가 가장 멀다는 어느 국민의식조사 결과가 아뜩하다. 통일은 ‘제도의 통일’을 넘어 ‘사람·마음의 통일’이어야 한다는데….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다, 그네들의 고단한 삶에 생각이 가닿았다. 술이라도 퍼마셔야겠다.

이제훈 국제부장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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