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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2 18:57 수정 : 2014.02.13 19:49

김영희 문화부장

고백하자면, 지난주 개봉을 이틀 앞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예매가 막히는 것 같다는 제보를 받은 뒤, 담당 기자가 띄운 1차 메모를 본 내 첫 반응은 이랬다. “생각보단 많네.” 70여개관이었다. ‘저예산에 사회적 이슈 영화가 이 정도면 뭐….’ 예매가 취소된 증거는 없다고 했다. ‘의혹만 갖고 기사를 쓸 순 없잖아.’ 저녁이 되어 한 체인이 15개관을 3개관으로 줄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기사를 쓰도록 했다.

굼뜬 반응에 은연중 작용했던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장들이 개봉관을 적게 잡은 것 자체를 비판할 순 없다.’ 명백한 외압의 증거가 있거나 <천안함 프로젝트>처럼 개봉 뒤 상영이 취소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닐 거다.’ 흑백논리와 폭로성 성격만 강조된 작품이라면 시장논리로 판단했다는 극장을 비난할 순 없다.

조지 오웰까지 인용하지 않더라도, 문학은, 예술은 근본적으론 정치성을 띤다. 하지만 문화 콘텐츠를 둘러싸고 진영논리가 입혀져 보수건 진보건 한쪽의 주장이 100% 진실인 양 호도되며 음모론이 증폭되는 건 또 다른 일이다. 이 영화 상영 문제로 단체들이 극장에 항의 성명서를 내고 국회의원이 외압 의혹을 제기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던 건 그 때문이었다. 지난 주말 전까지 얘기다.

각 지상파에서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쏟아내는 주말, 그 어디에도 <또 하나의 약속>은 보이지 않았다. 화제작은 다양하게 변주해 몇주씩 내보내고, 저예산이나 예술영화도 빠뜨리지 않던 프로들이다. 박철민, 윤유선, 김규리, 이경영 등 낯익은 배우가 대거 등장하는 극영화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보수적 신문은 말할 것도 없다. 상영 시스템에 눈을 돌리면, 개봉 뒤 반응에 따라 스크린이 늘어나는 슬라이딩 방식이 살아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개봉 당일 한꺼번에 걸리는 와이드 릴리스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난 주말 스크린은 192개가 됐다지만 서울시내만 봐도 3대 체인의 메인극장을 포함해 25개구 중 10개구에선 이 영화를 볼 수 없고, 아침 한번 밤에 한번 트는 곳이 상당수다. 이 모든 것이 ‘시장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사실 상영을 둘러싼 이런 조건보다 내 고정관념을 흔든 건 영화 자체다. 삼성 기흥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지 2년 만에 백혈병에 걸려 끝내 숨진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투쟁은 너무나 잘 아는 스토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거대한 벽 앞에서 느꼈을 순간순간의 두려움, 고민, 절망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눈물을 강요하지 않지만 극영화가 주는 공감의 힘은 활자화된 기사나 방송다큐와는 또 다르다.

몇년 전 경제부 기자 시절, 한국인의 백혈병 통계와 함께 삼성으로부터 가장 자주 들었던 논리는 ‘삼성이 그러면 다른 반도체 공장에선 그 몇배의 환자가 나왔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난 여전히 그에 완벽히 반박할 논리도, 백혈병이 반도체 공정과 직결됐다는 확신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삼성이 당당하다면 적어도 당시 어떤 화학물질들이 사용됐는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시 근무자들이 두려움 없이 작업조건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약속>은 그런 ‘상식’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 속, 딸이 자신의 택시 뒷좌석에서 숨진 뒤 아버지는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도 안 들어줬는데 윤미가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어요”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이종란 노무사는 생전의 황유미씨를 만나지 못했다. 그 허구의 대사가 절실하게 들렸던 건, ‘그들만의’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2014년 한국 사회에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 #238] "삼성이 응답하라", 영화 <또 하나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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