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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2 19:05 수정 : 2014.04.02 19:05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저는 현수예요. 매덕 현수 오캘런이라고도 하죠. 제가 누구냐고요? 미국에 입양된 지 104일 만에 미국인 아버지한테 맞아 죽었다고 2월 초 기자들이 보도한 그 아이랍니다. 미국 검찰이 미국인 아버지를 1급 살인 및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했죠. 미국인 아버지는 살인이 아니라 사고라고 주장하네요. 제 죽음의 진실이 뭔지 궁금하다고요? 그건 직접 알아보세요.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사랑의 선물이랍니다. 물론 엄마·아빠도 있(었)죠. 저는 2010년 5월17일 태어났다는데, 누구 피붙이인지 입증할 공문서가 없대요.(입양 허가를 받으려면 가정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를 내야 하는 입양특례법 규정이 2011년 8월 신설됐다네요.)

다른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38~40주를 채우는데, 저는 28주 만에 세상에 나왔대요. 그게 탈이었나 봐요. 뇌수종·뇌위축증·발달지체 등 장애가 제 평생친구가 됐어요. 엄마는 20대였고 결혼하지 않았대요. 낳자마자 입양기관에 저를 맡겼다네요. 제가 미숙아에 장애아라서 그런 건지, 저를 기를 형편이 안 돼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입양아의 90% 남짓이 미혼모의 자녀고, 장애아는 대부분 국외입양된대요. 한국은 미혼모나 장애아가 살기엔 참 험한 곳이에요.)

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입양기관에 맡겨졌고, 바로 위탁모인 김씨 아줌마네로 갔어요. 거기서 일곱달 정도 살았죠. 그때가 제 짧은 삶에서 그나마 행복이 뭔지, 사랑이 뭔지를 맛본 시기 같아요. 그런데 입양기관이 저를 다시 데려갔대요. 그렇게 한국에서 41개월 동안 여기저기 떠돌다 미국에 가게 된 거죠. 입양특례법은 국외입양에 앞서 적어도 5개월간은 국내입양을 우선 추진하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입양기관이 실제 그리했는지 저는 몰라요. 참, 그 입양기관이 몇해 전에 국내입양 우선추진 기간에도 국외입양에만 매달려 정부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네요. 그게 돈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있대요. 미국 쪽 입양기관인 ‘가톨릭 채리티스’ 누리집을 보면 한국과 미국의 입양기관이 제 입양으로 받은 수수료가 4만1650달러(4400여만원)래요. 국내입양 수수료 270만원과 차이가 크죠? 입양인 관련 단체들이 국외입양을 ‘아이 수출 산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죠. 근데 제 입양기관은 국외입양 1명마다 523만원씩 적자라고 주장해요. 누구 말이 맞나요? 어쨌든 관련 기준을 만들어 이를 지키게 하지 않은 정부 책임이 더 큰 거 같아요, 제 생각에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수출한 나라래요. 공식 통계가 있는 1958~2012년에만 16만5368명을 수출했다니 실제론 훨씬 많을 거예요. 경제규모가 세계 15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가장 낮은 초저출산국인데, 지금도 아이 수출에서 세계 4~5위를 다툰대요. 이젠 ‘아이 수출’ 좀 그만하면 안 되나요? 입양된 뒤 프랑스에서 장관까지 된 플뢰르 펠르랭(김종숙) 아줌마 같은 분도 더러 있지만, 저처럼 죽거나 자살하는 이가 훨씬 많아요. 누군지 모를 생부모를 찾아 헤매는 이들은 정말로 많고요. 정부 자료를 보면, 1995~2005년 사이 7만6648명의 국외 입양인이 한국에서 생부모를 찾아 나섰는데, 성공한 이는 2113명(2.7%)뿐이래요.

제 얘기가 끔찍한가요? 그보다 저, 부탁이 있어요. 저처럼 생부모가 포기한 아이를 사회가 돌볼 ‘대안 양육’ 시스템을 마련해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그래야 저 같은 아이가 또 생기지 않죠. 한국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어요. 아줌마·아저씨들도 관심 좀 가져주세요. 그럼 안녕.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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