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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3 19:02 수정 : 2014.04.24 09:36

이춘재 스포츠부장

세월호 참사와 박종환 감독 폭행 논란은 같은 날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두 사건 모두 리더의 참모습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무책임의 막장을 보여준 세월호 선장은 그가 20년 경력의 선장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지 못하게 한다. 사고 순간 ‘나부터 살고 보자’는 행동은 ‘선장은 배와 운명을 함께한다’는 명예로운 전통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이와 여자를 먼저 구한다’는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사고 발생 후 정부 고위 관리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리더와는 거리가 멀었다. 리더는 위기 때 빛을 발한다는데, 리더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리더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박종환 감독은 훌륭한 리더였다. 전매특허인 스파르타식 리더십은 그를 명장 반열에 올려놨다. 그의 팀이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대회 4강에 올랐을 때 세계 축구계는 깜짝 놀랐다. 톱니바퀴 맞물리듯 짜임새 있는 조직력으로 화려한 개인기의 남미 팀들을 제압하는 모습에 외신들은 ‘오리엔트 특급’ ‘붉은 악마’라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월드컵 본선 진출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그는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다. 최순호 등 당대의 스타 선수들이 강압적인 훈련을 거부해 대표팀을 무단이탈했을 때 여론은 오히려 선수들을 “배은망덕하다”고 꾸짖었다.

박 감독은 지난해 말 성남FC 감독을 맡으면서 “스파르타식 훈련 같은 거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의 강압적인 리더십이 프로 선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었다. 선수들과의 마찰 우려에 대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쳤다. 약속은 불과 4개월 만에 깨졌다. 지난 16일 연습경기 도중 선수들한테 손찌검을 한 사실이 들통나 자질 논란 끝에 스스로 사퇴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그의 전성기였던 30년 전과 지금은 비교조차 무의미하다.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 오래다. 권위주의와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렸다. 인권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가치가 됐다. 축구에서도 스파르타식 훈련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리처드 뉴스태트는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시대에 리더의 힘은 설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강압과 복종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어울리는 말이다.

박 감독이 약속을 지켰더라면 명장으로 축구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았을지 모른다. 그의 시계는 선수를 향한 지도자의 손찌검이 용인되던 ‘호랑이 담배 먹던 때’에 멈춰 있었다. 헝그리 정신을 강요받은 선수들도 참고 버텨야 했던 시절이었다. 박 감독은 억울한 모양이다. 자진사퇴한 날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뺨을 맞은 선수는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데, “선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한 것일 뿐 폭행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구단이 낸 보도자료에서 “이번 일로 고통을 받았을 선수단과 성남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밝힌 것이 그의 진심이었는지 헷갈린다.

박 감독은 세상이 바뀐 걸 몰랐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그의 발언은 빈껍데기였다. 시대에 맞지 않는 리더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킨다. 세월호 선장과 정부 관리들은 무책임한 리더가 얼마나 위험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무한경쟁을 핑계로 원칙을 무시하면서 오직 나와, 내 자식과,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슬프다. 살면서 언젠가는 한번쯤 리더가 되기를 요구받는다. 진정한 리더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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