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18 18:17
수정 : 2014.05.18 18:17
|
이춘재 스포츠부장
|
스포츠부장이 할 말은 아니지만, 25일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이 그리 반갑지 않다. 축구를 태생적으로 싫어하거나, 한국의 16강 전망이 밝지 않아서 등의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악몽과 같은 세월호 참사가 12년 전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 탓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취재기자로 일본에 파견됐다. 브라질을 비롯한 우승후보들 간의 빅매치와 결승전이 일본에서 열리기 때문에 잔뜩 들떠 있었다. 기대는 곧 후회로 바뀌었다. 한국 대표팀의 뜻밖의 선전으로 뉴스의 주 무대가 바뀐 것이다. 외신은 물론 공동개최국인 일본 언론조차 한국팀의 선전과 붉은악마의 응원 소식을 크게 다뤘다. 텔레비전으로 광화문광장의 길거리 응원을 보며 얼마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왜 귀국하지 않느냐’는 일본 기자들의 장난스런 질문이 야속하게 들릴 정도였다.
여중생 효순·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것은 이런 분위기가 막 달아오를 때였다. 조별 리그에서 폴란드를 2 대 0으로 꺾고 미국과 1 대 1로 비긴 뒤 ‘사상 첫 16강 진출’의 마지막 관문인 포르투갈과의 일전을 하루 앞둔 6월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선 2차선 도로 갓길을 걸어가던 꽃다운 두 여중생이 미군의 육중한 무한궤도 차량에 치여 숨졌다. 전시도 아니고 후진국도 아닌 월드컵 개최국에서 민간인이 미군에게 희생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언론들은 이를 크게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도 사건 당일 사회면에 작게 처리하는 데 그쳤다. 아예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들도 있었다. 대표팀의 잇따른 승전보와 열광적인 응원 소식이 온통 지면과 방송을 도배했다. ‘월드컵 4강 신화’는 블랙홀처럼 모든 뉴스를 빨아들였다.
당시 신문과 방송을 보며 유가족들이 느꼈을 참담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 발목 잡힌 정부를 대신해 사건을 낱낱이 파헤쳐야 할 언론이 월드컵 열기에 취해버린 모습은 유가족들을 절망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시민들의 제안으로 불붙은 촛불시위를 뒤늦게나마 떠들썩하게 보도했지만, 미 군사법원의 무죄 평결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미군 범죄에 재판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소파의 불평등 조항을 단 한 줄도 바꾸지 못했다. 시점을 놓친 보도는 이 빠진 도끼보다 더 무뎠다. 지금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었다면 요즘 유행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는 이미 이때 등장했을지 모른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월드컵 응원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 차원에서 길거리 응원을 자제하자는 제안이다. 세월호 참사가 헛되이 잊혀질 것을 우려하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월드컵은 월드컵일 뿐’이라며 지나치다는 반응도 있지만, 12년 전의 아픈 기억은 결코 기우가 아님을 일깨운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가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추모 분위기 확산을 막지 못해 안달난 듯한 정부와 여권 인사, 일부 언론에 월드컵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일 것이다.
참사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빠르게 식는 것 같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을 끈기 있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의 ‘예고편’이었던 태안 해병캠프 실종 사고와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가 그랬다. 언론은 때때로 망각을 가속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한겨레>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사람이 중심이다’라는 연중기획을 준비한 것은 12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다짐이기도 하다.
이춘재 스포츠부장
cjle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